자타공인 서울촌년이 태어나서 처음 부산에 갔는데 데모나 하고 왔다. 1박2일 일정 중 13시간 정도를 버스 안에만 있었더니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모처럼 영화제에 가서 열이 올라 금방 집에 돌아올 정도의 저질체력도 한몫했다.

  1. 서울에서 하는 집회랑 똑같았다. 지역색(?)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서울을 벗어나 멀리까지 나가서 하는 집회에는 뭔가 다를 게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하긴 집회가 뭐 다 거기서 거기지. 

  1-1. 부산 시내 진입하기 전부터 검문검색을 하고, 중무장을 한 경찰 병력을 시내 곳곳에 까는 식으로 경찰이 엄청 신경질적으로 나온 덕분에 초장에 청학성당에서 고립되었다. 행진은커녕 이틀 내내 청학성당 방면에서 노숙이나 하고 있었다. 85호 크레인은 구경도 못 하다가 이튿날 아침에 시내버스 타고 빠져나올 때 잠깐 구경했다. 크레인 중간 부분에 사수대가 손 흔드는 것만 보고 김진숙 지도위원은 보지도 못했다.
  이 미친놈들이 행진 대오 막는 건 그렇다치고, 아침에 시내버스 진입로에 차벽을 세워놓는 바람에 30분을 지체하게 만들었다. 시위대만 막은 게 아니라 부산 시민들 가는 길까지 같이 막는 거다. 그래 놓고서는 경찰청 앞에서 해산 집회 할 때 방송으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불법집회를 하는 바람에 교통체증이 유발되어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으니 그만두지 않으면 강제 해산을 시키겠어요 뿌우" 으아니 경찰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경찰이 할 일은 애먼 길을 통째로 막는 게 아니라, 우회로를 만들어서 시민들이 불편함 없이 통행할 수 있게 만드는 건데……. 남들 다 가야 하는 길을 막는 저런 짓거리에 어딜 봐서 상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 위헌돋네;

  1-2. (겁나 힘들고 지루했기 때문에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했음을 전제로 하면) 희망버스 지도부는 생각이라는 걸 별로 안 하는 사람들 같았다. 시위대 인원 운용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건방지게 경찰 병력을 포위하겠다느니 어쩌니 하다가 시위대를 고립시키는 정도의 간지! 차라리 같이 있던 잔뼈 굵은 운동권들이 내놓는 대책이 훨씬 그럴듯해 보였다. 게다가 풍선도 아니고 불 붙여야 하는 풍등을 전봇대랑 전깃줄이 있는 좁은 차로에서 날리면 어쩌자는 건지. 가로수랑 전깃줄에 풍등이 걸려서 타는 거 보니까 내가 다 아찔했다. 혹시라도 정전이 되거나 불이 났더라면 민심이 밀어서 잠금해제될 뻔했다. 물론 검은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가는 수십 개의 풍등은 별처럼 보여서 예쁘긴 했다. 낭만적이기도 하고. 그냥 김지도가 있는 크레인에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자! 하는, 정말정말 순진한 의도에서 기획된 모양이다. 너무 해맑아서 차마 더 화를 못 내겠다.(진심으로-_-;)
  아무튼 지도부는 앞에서 악을 쓰면서 풍등 날리지 말라고 하는 와중에, 뒤에서는 의사 전달이 제대로 안 되어서 계속 풍등을 날렸다. 진행자가 처절하게 외쳤던 말이 아직도 안 잊혀진다. "이제 희망버스에 풍등은 없습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여러분!" -_-;;;
  방송차가 도착하지 못했을 때에는, 대학생 사람연대에서 나온 학생이 악 지르는 걸 보다 못하고 진보신당 학생위에서 메가폰을 빌려주었다. 그거라도 없었으면 고립된 대오 분위기가 더 중구난방이었을 것이다. 8박자 구호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지도부는 시위대 진로나 프로그램 방향을 결정할 때 루즈하게 진행하고 우왕좌왕하는 것도 모자라서, 다중지성의 힘을 빌리고자 하니까 의견 있으면 지도부에 말해달라는 헛소리도 했다. 아니, 지금 다중지성이 문제가 아니거든요? 거기 모인 인원이 죄다 오더 받아서 따라야 하는 상황에서 최종 결정은 지도부가 하는 건데 뭘 다중지성을 거기다가 들이대ㅠㅠ 그냥 너희가 무능하다고 솔직하게 말해ㅠㅠ

  1-2-1. 문화제 프로그램 재미없다. 민중가요에 맞춰서 춤추는 거 지겹다. 무키무키만만수 공연 때에는 밴드랑 관객이 단체로 약을 한 것처럼 보여서 무섭긴 했지만 재미있어 보이기는 했다. 브금으로 민중가요 깔고 하는 율동 같은 건 정말 지루하다. 차라리 대오 후미에서 술먹고 마피아게임을 하거나, 돗자리 깔고 누워서 자는 게 훨씬 낫다. 고립되고 행진도 못하고 구호만 외치기도 뻘쭘하니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재미있으라고 하는 걸까. 후자면 정말 답 없다.

  2. 그래도 빨갱이들이 우글우글한 사이에 있으니까 마음은 편했다. 1박2일 동안 절절하게 느낀 건데, 아무래도 주변에 빨갱이 동지 내지는 운동권 친구가 없어서 꽤 외로웠나보다. 중앙문화 편집장 했던 대학원생 분이랑 전화번호 교환도 했다. 작게는 교지 세미나부터, 크게는 학내 단체 만드는 것까지,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졸업까지 남은 시간이 적다는 게 아쉬워 죽을 지경이다.




문제의 풍등이다. 보도사진 보니까 풍등 날리는 장면이 가장 많이 쓰였다. 예쁘긴 했지. 현장이 정돈되고 아름답지 않았다는 게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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