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만 날려버리는 수준의 귀여운 지뢰가 아니었다. 내가 어쩌자고 이 수업을 들었을까. 나중에 귀찮아질 일을 만들기 싫어서 한 학기 내내 괴로워할 꼴을 자초하다니. 단언컨대 이 수업은 쓰레기다. 학생들에게 커피셔틀을 시키는 권위적인 교수가 혹시라도 여길 찾아내는 상황이 생길까 무서우니 무슨 수업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겠다(……라고는 하지만 바로 다음 줄만 읽어도 무슨 수업인지 견적이 나온다). 어쨌든 내가 이 수업에서 배울 것은 정말 하나도 없어 보인다. 중세철학사야 2학기 때 들으면 되는 거고, 고대철학사도 2학년 때 이미 들었고, 이번 학기 내내 니코마코스 윤리학 발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겹도록 배울텐데. 아니, 꼭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러셀 서양철학사만 각 잡고 읽으면 이 수업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개강 후 2주간 배운 것은 레포트를 '예쁘게' 쓰는 방법 하나뿐이다. 각주를 어떻게 넣는가, 참고문헌은 어떻게 넣는가, 글자 크기를 얼마나 키우는가. 그리고 교수는 얼마나 많은 내용을 레포트에 우겨넣었는지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발표를 시킨다면서 유인물을 사람 수대로 뽑아 오라고 해 놓고 발표를 안 시키는 건 무슨 경우지? 그러면서 종이 낭비를 운운해? 미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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