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많고, 전혀 검열하지 않았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감독 장철수 (2010 / 한국)
출연 서영희,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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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의 아니게 2010 피칠갑 복수극 3부작, 그러니까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모두 보았다. <악마를 보았다>는 보면서 힘들어했고, <아저씨>를 볼 때에는 웃느라 바빴는데,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앞의 두 개와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괜찮았다.

  씨네21에서 기사를 잘못 읽는 바람에 줄거리를 다 알아 버렸지만, 그 정도로는 영화 감상이 방해되지 않았다. 큰 줄기만 보면 섬에 갇혀 몹시 혹사당하던 여자가, 견디다 못해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격으로 가해자를 죽여버리는 복수극이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영화가 다르게 읽힌다. '통쾌한 복수극', '방관자에 대한 징벌' 같은 단순한 수식어로는 설명할 수 없고, 열 번씩 곱씹어도 새로운 맛이 날 떡밥이 지천에 널려 있다. 그러면서도 난잡하지 않고 깔끔하다는 게 또 대단하다.

  보통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음을 온몸으로 어필하는 영화일수록 지저분하고 몰입도 힘든 법이다. 적절한 예시로 <방자전>이 떠오른다. 웃길 거면 웃기게, 꼴릴 거면 꼴리게, 슬플 거면 슬프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를 너무 한꺼번에 보여주려다 보니 이도저도 아닌 잡탕 찌개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웃기지도, 꼴리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내 마음에 자욱을 남긴 것은 방관자에 대한 복남의 처절한 단죄도, 철저하게 타산적인 삶을 살았던 해원의 변모도, '섬'이라는 협소한 세계의 논리에 휘둘리며 괴물처럼 살 수밖에 없었던 비정한 '피해자들'도 아니었다. 괴물 같은 섬에서 사는 사람 같은 괴물들은 복남을 가축처럼 취급했지만, 정작 자신은 끝까지 사람으로 남고자 했던 복남 때문에 울었다.

  복남은 머슴 영감과 함께 섬 전체의 평화를 위한 일종의 희생양이었다. 풍랑으로 남자들이 다 죽어버린 섬에서 머슴 영감은 여편네들의 외로운 밤을 달래 주어야만 했고, 복남은 젊은 여자가 없는 섬에 사는 남자들의 공창 취급을 당했다. 머슴 영감이 맹꽁이 풀을 씹으며 불행을 잊었다면, 복남은 연희를 의지하며 지옥 같은 삶을 버텼지만 연희마저도 빼앗기고 말았다.

  연속된 불행 속에서 복남이 정신줄을 놓고 악마같은 살인마로 돌변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소설과 영화에서는 많은 경우 "용서가 가장 큰 복수이다"를 운운하며 주는 만큼 갚아주는 방식의 복수극을 지양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는 특이하게도 복수와 용서를 한데 묶어 내놓는 방식을 택했다. 복남이 처참하게 난도질한 시체의 무덤을 곱게 만들고, 자신과 같은 처지나 마찬가지였던 머슴 영감에게 밥상을 차려 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이 괴물을 쫓아다니며 괴물이 되었던 것과는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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