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많고, 전혀 검열하지 않았다.

  조금 일하고 돈을 적게 받더라도 도서관에서 일하기로 한 결정은 올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현명했던 것 같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하루에 책 한 권을 읽고 영화 한 편을 본다. 대부분 몹시 자극적인 영화이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책과 영화를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보고 있자니, 이것들이 내 정신 구조에 장기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아무거나 머릿속에 우겨넣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우리동네
감독 정길영 (2007 / 한국)
출연 오만석,이선균,류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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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 전 선공개된 스틸컷과 예고편이 마음에 들길래 보려다가 안 봤던 영화이다. 왜 소리소문없이 묻혔는지 알겠다. <하녀>와 <우리 동네>의 사례만으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예고편이 흥미로운 영화는 대체로 본편에서 그 이상을 보여주기 힘든 것 같다. 예의상 재미있었다고 칭찬할 정도로 괜찮은 영화는 아니었다. 산만하기도 했을뿐더러 참 오글거렸다. 연쇄살인 스릴러가 오글거리기도 쉽지 않은데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겠다. 산문적인 설명을 늘어놓아야 하는 영화는 주석을 곁들여야 하는 농담처럼 최악이다. 오그라즘은 "선생님, 나 미친 놈이지? 그치?"에서 절정에 달했다. 살인마가 자기를 미친 놈이라고 지칭하니 손발이 여주 휴게소 버터오징어마냥 오그라들 수밖에. 부릅뜬 흰자위와 비틀린 입매에서도 광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사이코패스적 연쇄살인이 치정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도 흥미와 개연성을 대폭 희석시켰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이야기가 지저분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쓸데없는 곁가지는 쳐냈어야 했다.

큐브
감독 빈센조 나탈리 (1997 / 캐나다)
출연 니콜 드 보에,니키 과다그니,데이빗 휴렛,앤드류 밀러,줄리안 리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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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히도 본편보다 속편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군부와 정부 권력의 실체가 대체 언제쯤 드러날지 쓸데없이 고민하고 말았다. 실은 누가 희생자들을 큐브 안에 집어넣었느냐 고민하기보다 희생자들이 큐브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버린다는 발상 자체는 새롭지 않다. 그러나 나쁜 놈이 끝까지 나쁘고 착한 놈이 끝까지 착한 영화가 아니라서 흥미롭고, 이야기 전개에 음모 따위가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담백하다. 도덕과 규범이 존재할 수 없는 밀폐공간에 남녀를 집어넣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걸러내지 않은 점도 인상적이었다. 로맨스일 수도 있었던 이야기가 일그러지는 속도는 순식간이다.
  영화 초반에는 어둡지 않은 공간이 공포를 자아낼 수 있기는 할까 궁금했다. 그런데 한 발만 잘못 내딛으면 처참하게 죽는 상황과 원색의 조명이 결합하니,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에서도 의외로 압박감이 상당하다. 카잔이 빨간 방에서 눈을 가리고 발작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감독 장진 (2005 / 한국)
출연 차승원,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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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는 내내 헤드폰 쓰고서 낄낄거리다가 엔딩 보고 멍때렸다.
  뭐지?
  뭐지????
  일부러 작위를 더해서 온갖 것들을 지독하게 비틀고 꼬아 놨다는 건 알겠는데, 이건 <살육에 이르는 병>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사람 뒤통수를 후려친다. 맞은 머리에서는 에밀레~ 하는 통쾌한 소리 대신 철퍼덕 하고 찜찜한 소리가 난다. 젖은 걸레로 얻어맞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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