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I아버지에게맺혀있는피의역사
카테고리 만화 > 그래픽노블
지은이 아트 슈피겔만 (아름드리, 2007년)
상세보기
26년
카테고리 만화 > 드라마
지은이 강풀 (문학세계사, 2007년)
상세보기

  <쥐>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을 안고 나치의 만행이라는 기억 속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슈피겔만과, 그런 아버지의 기행 아닌 기행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아들 슈피겔만이 들려주는 제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 박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26년>은 전남도청에서 목숨을 잃은 다섯 명의 아버지와, 그 부모의 한을 고스란히 체화한 것처럼 자라난 다섯 명의 아들딸들이 과거를 바로잡고자 나서는 이야기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과거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나 아직도 과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전자의 아들 슈피겔만이 이야기의 실질적 주체인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과거를 이해하려 해야 한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하는 반면, 후자의 아들딸들은 부모 세대가 겪었던 과거의 고통을 현재까지 짊어지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이다. 또한 표현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칸 만화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쥐>는 유태인을 쥐로, 독일인을 고양이로, 폴란드인을 돼지로 표현하는 등, 표현 방식에서 생경함과 충격을 유도한다. <26년>은 반면 인터넷이 발달하며 함께 성장한 인터넷 만화로, 스크롤을 내리며 만화를 보는 독자를 고려하여 그려졌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총알이 스크롤을 내림에 따라 어디에 당도할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새로운 표현 방식의 예이다.

  사실 ‘과거를 살고 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하다. 과거의 희생자들은 비록 세월이 오래 지난 까닭에 타자화 되었으나, 과거의 일이 아직 온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의 일은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기실 완벽하게 화석화되는 과거란 없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은 과거를 살고, 현재를 살며, 또 미래를 살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여전히 우리는 아픈 세월을 살고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역사다!” 곽진배의 피를 토하는 듯한 이 외침은 비단 광주 민주화운동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치 독일 하에서 번성했던 많은 기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번창하고 있죠. 모르겠어요. …아마 모든 사람이 죄책감을 느껴야죠. 전부가! 영원히 말이에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머뭇머뭇 대답하는 아들 슈피겔만. 전쟁이 끝난 후 수 차례에 걸친 재판을 통해 많은 나치 잔당과 학살의 주범들이 단죄 받았다. 독일인들은 그것에 대해 잊지 않도록 오랜 시간에 걸쳐 부끄러운 역사를 교육받았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학살과 전쟁에 가담한 죄가 있음에도 기득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그 학살과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 모두가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슈피겔만은 말한다. 그러나 그 인종차별과 학살 행위의 피해자인 아버지조차도 ‘깜둥이’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며 그를 자신에게서 격리하려 든다. 재혼한 아내와 아들조차 학을 뗄 정도로 병적인 검약을 실천하는 등 전쟁의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는 그가, 과거에 나치에 모질게 당한 설움을 잊은 듯이 다른 이를 다시 차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정신이 과거에서 이어진 현재에 머무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2008년 작성. 수업 제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