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감독 김지훈 (2007 / 한국)
출연 김상경,안성기,이요원,이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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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휴가>가 막 극장에 걸렸을 당시, 제작진 측에서는 그동안 비교적 자주 논의되었던 소위 ‘운동권’의 역사보다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질적 주역인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사건을 조명하였다는 뜻을 밝혔다. 과연 이 영화는 제작진의 이러한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였을까? 영화 초반 광주의 시민이며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라 할 만한 민우와 그의 친구는 연애 상담을 하기 위해 식당 텔레비전 뉴스를 꺼 버린다. 그러나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후에는 자신들을 폭도로 모는 뉴스를 보며 화를 낸다. 그 의도가 뻔히 보여 세련되지 못한 연출이지만 제작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던 ‘일반 대중’이 민주화운동의 투사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과연 ‘운동권’과 ‘일반 대중’은 본질적으로 다른 인종인가? ‘운동권’과 ‘일반 대중’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권에 대항하는 대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기준으로 하여 둘을 나눌 수 있다고 언뜻 생각하기 쉽지만, 대의라면 소위 ‘일반 대중’에게도 충분히 있었다. 죄 없는 이웃이 폭도로 몰려 공권력의 압제에 희생되었을 때, 작금의 현실에서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소위 ‘운동권’의 정권퇴진 운동에 동참하는 시민이 생겨난 것이다. 모두가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 마음을 얼마나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할 수 있는가가 다를 뿐 ‘운동권’과 ‘일반 대중’을 굳이 나누려고 시도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대중이 바보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시점에서부터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가 관객에게 눈물을 강요한다. 분명히 마음을 동하게 할 만한 장면은 넘쳐난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비명을 지르다 죽어가는 여학생, 괴로워하는 시민으로 넘쳐나는 병원, 피붙이를 잃은 이들의 절규, 마지막 진압 직전 도청 건물에서 이루어진 대령의 감동적인 연설, 전우를 기억하기 위해 무전기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민군들……. 모든 것이 너무나 극적이다. “울어? 안 울어? 이래도 안 울래?”라고 말하는 듯하다. 제작진이 의도한 대로 눈이 아프도록 펑펑 울면서도 마음은 개운치 않다.

  <화려한 휴가>는 그저 끝나지 않은 비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 번 보고 잊어버릴 오락영화일 뿐이다. 때문에 “시민 여러분, 저희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영화 끝에 메아리처럼 울리는 이 짧은 대사는, 영화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압축하고 있는 중요한 것임에도, 과거를 재조명한다는 명분을 잃지 않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사족처럼 들린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으며 식사에 곁들여 당시의 비극에 대해 열을 올리며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곧 광주를 잊어버릴 것이다. 영화가 그런 식으로 다루어지는 것이야 상관없다. 문제는 사건 자체가 그렇게 치부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음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하기보다는 그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아직 책임 소재 논란도 다 종식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대로 그저 거대한 재난으로, 한국 현대사에 남은 지울 수 없는 얼룩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만 했던 재난이 아니라 범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잘못이었다.

  * 2008년도 작성. 수업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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