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문화제였다. 물론 상황 자체는 전혀 즐겁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시종 부드러웠고 때로 유쾌했다. 오카리나 소리와 노랫소리가 잔잔하게 공기를 울렸다. 하지만 자리를 잡자마자 정면으로 닭장차가 보였고, 경기장에 올라가는 계단 난간 쪽에는 경찰 두 명이 자리를 잡고 서서 연신 채증을 했다. 단지 촛불을 들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었을 뿐인데.
처음으로 가두시위를 했던 5월의 어느 날 우리는 걸어서 동대문운동장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게 휘둘러질 일이 결코 없을 거라고 여겼던 폭력이 무리지어 내 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겁에 질렸었다. 감색의 헬멧, 방패, 제복이 망막에 낙인처럼 찍혔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플랫폼에 서 있는 공익근무요원을 보고 꽤 놀랐다. 그가 입은 제복도 감색이었다. 그 날 처음으로 누구를 위해 공권력이 존재하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오늘 한동안 잊고 있었던 질문을 다시 던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구를 위한 공권력인가.
선선한 초저녁 바람이 연신 촛불을 까부르고 있었고, 나는 갑자기 서러워졌다.
아무리 요즘 사람들 감성이 팍팍하다고는 해도 이 정도 감상에 젖어있는 것 정도는 봐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