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가 온다
국내도서>소설
저자 : 백가흠
출판 : 문학동네 200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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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도 귀엽고 표지도 노랗고 예쁘길래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집은 책이었다. 막연하게 성석제 단편집같은 느낌이리라 생각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라는 <광어>만 하더라도 사실 꽤 흔하고 지고지순한 이야기여서 마음에 들었다. 매춘부를 사랑하는 무능력한 청년과, 청년의 호의를 야반도주로 갚는 매춘부. 그런데 그 다음부터 주인공들은 때리고 맞고 학대하고 부수며 서로를 '사랑'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포주 노릇을 하는 남편과 몸 파는 아내, 자신과 미래의 아이 모두에게 엄마가 되어 줄 부인을 꿈꾸는 백수 청년, 연쇄살인, 오입쟁이……. 솔직히 뒤통수 맞은 기분이다. 읽는 내내 <목화밭 엽기전>이 생각났다. 비뚤어진 인간형을 그로테스크하고 불쾌하게 묘사한 작품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작품이 주는 불쾌감을 사전에 어느 정도 인지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단편 9개를 다 읽었지만, 자기애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는 극히 유아적인 행동에서 프로이트적 욕망까지 읽어낼 재주는 없었는데, 꿈보다 해몽이라고 작품집 말미의 해설이 더 친절(?)했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작중 인물들의 광태를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한다. 사랑만 있으면 강간도 사랑이라고 할 기세. 사실 그렇게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백가흠의 모든 소설들은 다 사랑이야기였다. 다만 그 사랑의 방식이 기이했을 뿐인데, 피학적 헌신, 가학적 폭행, 강간, 신성모독 등이 백가흠의 주인공들이 주로 택한 방식이었다.") 주인공들이 남성이 어머니와 같은 여성상을 원하는 지극히 오이디푸스적인 욕망 때문에 여자들을 사랑(학대)한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어머니'를 '경쟁자가 있는 순결하지 않은 여자', 즉 '창녀'로 도식화시키는 일련의 사고 과정이 몹시-_- 놀라웠다. <배꽃이 지고>와 <소돔 120일>을 비교하며 이성 만능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 운운한 부분 빼고 나머지는 다 잊어버리기로 했다.

  * 책을 빨리 읽는 편이라 마지막장을 덮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책을 읽으며 되도록 '많은 것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겠다. 고민의 결과 중 하나가 독후감 포스팅인데 이걸로는 불충분하다. 참 재미있었다, 로 요약되는 초등학생 수준의 감상을 남들 보는 데다 끄적이는 건 부끄럽다. 이면지를 가져다놓고 오른손에 볼펜을 들고 떠오르는대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면 좀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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