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전까지 그녀가 생각했던 인간의 범주란 게 있었다. 이제 그녀는 변했다. 인간의 범주가 얼마나 넓은 것인가를, 머리채를 잡히고 폭행을 당하던 바로 그 순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주민등록증을 가진 괴물, 학생증이며 졸업증명서며 명함을 가진 괴물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서로를 괴물이라 부르긴 좀 그렇잖아? 그래서 만들어낸 단어가 인간이 아닐까, 그녀는 생각했었다.

  - 박민규, <아침의 문>

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국내도서>소설
저자 : 박민규
출판 : 문학사상사 201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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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관에 갇힌 새끼고양이를 구하려고 행인들 앞에서 배를 내보이며 아양을 부리는 길고양이를 보았다. 무거운 머리를 어찌하지 못해 걸음걸이를 휘청이는, 아직 말도 제대로 트이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착한 세모'와 '나쁜 네모'를 어렵지 않게 구별해내는 장면도 보았다. 사람에게는 선한 마음의 씨앗이라는 게 있고 동물에게는 그게 없다고 맹자가 그랬는데, 잘 모르겠다.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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