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에 키스하기
국내도서>소설
저자 : 조너선 캐럴(Jonathan Corroll) / 최내현역
출판 : 도서출판북스피어 200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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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종종 사랑 앞에서 자기파괴적 욕망에 휩싸이곤 한다. 그 사람 앞에서 경동맥을 긋거나 목을 매고 죽어버리면 날 영원히 기억해주지 않을까? 베로니카에게 치를 떠는 샘의 마음은 이해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었던 애인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육탄 공세를 펼친다면 누구나 공포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바보짓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다는 절망 때문에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은 다시금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든다는 걸 아니까, 베로니카에게 자연히 연민을 느낀다. 땅끝까지 떨어진 자존감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며 누군가를 건강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연애 자체에 환멸이 느껴지는데, 그럴수록 외로움은 심해지니 미칠 노릇이다.

  베로니카가 과거에 만난 쓰레기같은 연인들 때문에 자존감이 너덜너덜해졌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부족한 자존감 때문에 그들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지는, 사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비슷하긴 한데, 어쨌든 본질은 하나이다. 자존감. 사인회에서 샘의 마음을 첫눈에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지만, 종래에는 동경하는 사람의 연인이 되었음에도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베로니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은 어딘가 종잡을 수 없는 매력 때문에 사람을 끌어모은다는데, 순 개소리다. 설사 이 말이 맞다손 치더라도, 똥물에는 똥파리가 고이고, 찌질이자석에는 찌질이가 붙기 때문에 질적으로는 전혀 좋을 게 없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은 자기 자신 하나도 수습하기 벅차므로 타인과 영속적인 관계를 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에리히 프롬의 말이 진리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타인을 온전히 품을 수 없다.

  * 슬로베니아의 베로니카와 미국의 베로니카. 두 명의 베로니카가 내 마음을 온통 헤집어놓았다. 일요일 밤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 <벌집에 키스하기>를 연달아 읽고 나니 기분이 갑자기 흐려져서(꼭 책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지만), 침대에 엎드려서 일기를 갈겨쓰고 울다 잠든 다음부터 감수성이 폭발하고 있다. 월요일에는 루시드폴 4집만 계속 들으면서 찌질거리고, 어제는 일하다가 김윤아의 <Going home>을 듣고 울었고, 집에 가서는 강철의 연금술사 63, 64화를 보고 울었다. 이제 소설이랑 영화 보고 우는 일만 남았다. 내가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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