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후문이 나 있는 뒤운동장이 있었다. 축구 골대가 있는 주 운동장과 구별하려고 그렇게 불렀다. 후문으로 나가면 뒷산에 기대어 지어진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 있었고, 커다란 돌부처도 있었고, 햇볕도 잘 들지 않아 사철 그늘져 있기도 했었고, 여러가지로 퍽 으스스한 곳이었다. 이 뒤운동장 끄트머리, 산과 학교가 만나던 곳에 있던 절벽 비스무리한 곳에, 동굴이라 부르기에는 좀 민망한 큰 구멍이 있었다. 요컨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떠돌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우리 학교에는 다른 학교처럼 괴담다운 괴담이 없었다. 이게 심히 불만스러워서 언젠가는 장난삼아 이런 이야기를 지어 퍼뜨렸다.

  "뒤운동장에 동굴 하나 있잖아? 거기 6.25때 북한군이 사람들 다 모아놓고 쏴죽인 데라던데? 밑으로 들어가 보면 뼈도 있고 그렇다나 봐. 귀신도 나올까?" 이런 터무니없는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산에서 주운 삐라를 경찰서에 가져가면 학용품 따위로 바꿔 주기는 했지만(아직도 그런가?) 일단 나는 반공교육 세대가 아니고, '공산당 때려잡자!'보다는 민족정신 함양 통일 글짓기대회 따위가 더 익숙하고, 심지어는 동명의 서울시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 오기까지 했는데.

  미지의 공간에 대한 공포를 무릅쓰고 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온 남자애들 몇몇이 그 밑에는 물과 쓰레기밖에 없더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더러는 내 이야기를 믿었다. 그 뒤 학교 전체를 새단장하면서 뒤운동장의 동굴도 없어졌다.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에 입학했고,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일상에 파묻혀서 내가 지어냈던 시시한 괴담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수능이 끝난 겨울쯤, 집에서 빈둥거리던 와중에 동생이 내게 말했다.

  "○○초등학교에, 왜 옛날에 뒤운동장에 동굴 있었던 거 기억나?"
  "왜? 그거 지금 없어졌잖아."
  "거기서 6.25전쟁 때 사람이 많이 죽었다던데. 막 뼈도 있고."

  잠시 멍해졌다. 거의 잊고 있었던 유년의 기억이 갑작스레 수면으로 떠오르는 기분은 묘했다. 내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어딘지 모를 곳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내 귀로 들어올 줄은 몰랐다.

  "……그거 내가 지어낸 건데."
  "엥? 언니가 지어낸 거라고?"
  "그래. 대체 어디서 들은 거야, 그 얘긴?"
  "몰라. 나도 들은 얘기라. 근데 진짜 언니가 지었어?"

  동생은 어이없어했고, 나도 어이가 없었다. 학교괴담의 시작이라는 게 거의 이런 식이지 않을까 싶다.

  학교괴담이 유독 으스스하게 들리는 이유가 공동묘지 부지가 싸고, 공동묘지의 음기를 아이들의 활달한 기운이 누를 수 있어서 그 자리에 학교를 짓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통과 관문으로 생각하여 사춘기 청소년들의 모든 욕구를 억누르는 몹쓸 관행 때문에 학생들의 한이 학교에 서려 있기 때문인지 난 잘 모르겠지만, 수많은 괴담류 중에서 학교괴담이야말로 으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교마다 최소 일곱 개 정도는 존재하는 괴담은 놀랍도록 비슷하다.(다 비슷비슷한 학교괴담에 비한다면 내 이야기는 조금 독창적일 수도 있겠다. 헌데 이야기의 모태인 동굴이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지금까지 구전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1. 세종대왕 동상이 읽고 있는 책이 밤마다 한 장씩 넘어가는데 그 책장이 다 넘어가면 학교가 망한다.
  2. 학교에 있는 동상들이 밤마다 깨어나서 싸움을 벌인다.
  2-1. 학교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깨어나서 싸움을 벌이는데, 이순신 장군 동상의 칼이 그 때문에 조금씩 닳는다. 칼이 다 닳으면 학교가 망한다.
  3. 학교 현판을 깨뜨리면 그 밑에서 동전이 하나 나오는데 그 동전을 빼내면 학교가 망한다.
  4. 학교와 관련된 전설 100개를 전부 안 사람은 죽었고, 100개 중 일부를 알고 있는 학생이 혼수상태에 빠졌다.
  5. 수위 아저씨가 실수로 학교 연못에 살던 이무기를 삽으로 때려죽였다. 그래서 소풍날마다 비가 온다.
  6. 복도에 걸린 유관순 열사가 밤마다 그림에서 빠져나와 돌아다닌다.

  그런데 대체 왜 괴담이 하나같이 학교가 망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걸까.

  대학교 중에 귀신 이야기로 유명한 곳은 한예종밖에 없다. 건물을 통과해서 수직상승하는 귀신이라든가, 항상 모퉁이를 돌고 있어서 뒤통수밖에 안 보이는 귀신이라든가, 지하 작업실 복도를 뛰어다니는 귀신이라든가, 기타 등등. 우리 학교에는 뭐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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