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신경정신과에 다닌다. 양약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던 친구 L의 걱정과 달리, 차도가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누가 그랬었지. 병은 초장에 싹이 보일 때 얼른 뽑아내야 한다. 세수만 대충 하고 삼선쓰레빠를 찍찍 끌고 병원에 다녀왔다. 수면유도제에 의지하게 될 것 같다고 걱정했더니, 앞으로 조금씩 약을 끊을 거라고 선생님이 그러셨다. 아침저녁에 먹을 약과 수면유도제를 따로 받았다.

  예전에 한창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 힘들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한테 딱 삼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뒹굴면서 쉴 수 있을텐데. 이번에 갑자기 일 잘리면서, 뭐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어요. 다행인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쉬기만 했거든요. 열심히 늦잠 자고.

  정말 힘들었던 모양이네. 하지만 앞으로 계속 그렇게 쉴 건 아니잖아요?

  네, 그래서 구직 사이트 뒤지면서 이력서 몇 군데 넣었는데,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더라구요. 괜찮으면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고 하길래 그렇게 하겠다고 했죠. 다시 일하러 다닐 거예요.

  오래 쉴 팔자는 아닌가보네.(웃음)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웃음) 그냥 제가 휴학생이니까, 집에서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걸 견딜 수 없을 뿐이에요.

  ㅇㅇ씨가 참 치열하게 살았잖아요. 이제 그러지 말아요. ㅇㅇ씨 말마따나 주말에 그렇게 일해봤자 고작 20만원 안팎의 돈을 버는데, 버는 돈보다 ㅇㅇ씨가 잃는 게 훨씬 많잖아요? 주중에 그렇게 우울해하고, 주말에는 잠만 자고. 토요일까지 일하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일요일까지 일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아니에요. 전 그냥 치열하게 산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실은 전혀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데, 그냥 열심히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주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바쁘다'와 '열심히 산다'는 동의어가 아닌걸요.

  그러니까 자기기만은 이제 그만.

  이제 주말에는 운동도 하고, 영문 위키피디아 뒤지면서 밴드 덕질도 하고, 보고 싶었던 공연 영상도 보고, 기타도 좀 퉁기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11월에 있을 한자 자격증 시험 공부도 하고……. 아무튼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야겠다. 열심히 산다는 건 이런 거겠지.



  "넌 꿈이 뭐니? 앞으로 어떻게 살 작정이야? 작정이란 게, 계획이란 게 너한테 있긴 하니? 글이 계속 쓰고 싶긴 해? 연습은 하니? 죽도록 하는 거야? 그런데 네 연습장은 왜 그렇게 깨끗하고 예뻐? 연습 안 하지? 썩 그렇게 글이 쓰고 싶은 것도 아니지? 꿈 같은 거 없는 거지? 작정도 계획도 없지? 아무 생각 없지?"

  "내 앞에서 울지 마. 짜증나."

  그, 근영언니……!

  그녕이가 날 디스했어 엉엉ㅠㅠ 언니 열심히 살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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