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세기를 넘게 재생산된 반공주의 회로는 모든 불법적이고 부패한 현실을 코 앞에서 보면서도 그럭저럭 순응하고 사는 버릇("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세상이 다 그런 거지"), 그것에 대한 도전이 도전자 개인에게 쓸모없는 고통과 번민을 안겨 줄 것이라는 공포("너 혼자 그래 봐야 너만 손해야. 세상이 바뀌겠냐"), 이것을 통해 유지되는 집단적 범죄 행위에 대한 동참과 인정("너나 나나 다 그렇게 뜯어먹으며 사는 거지. 도덕 군자라고 별 수 있냐?")의 정치 사회적 문화를 더욱 강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하였다.

  - 임지현 외, <우리 안의 파시즘>

우리 안의 파시즘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임지현 외
출판 : 삼인 200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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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목을 읽다가, 요 몇 달 동안 원치 않아도 해야 했던 인생 공부(?)가 생각나서 갑자기 욱했다-_-;

  온실 속의 화초가 난생 처음 돈을 벌어보겠답시고 아르바이트판에 뛰어들었을 때 받은 충격은 막대했다. 여직원은 술자리의 꽃이라느니,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느니, '돈 잘 버는 서울 남자'가 '부산에 있는' 나이트에서 '부산 여자'들에게 아낌없이 돈을 쓰면 여자들이 '자지러졌다느니',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런 얘기를 듣고 거의 컬처쇼크를 느꼈음을 토로했을 때 나를 더 화나게 했던 것은, 이야기를 들은 몇몇 사람들의 태도였다.

  "산다는 게 뭐 다 그런 게 아니겠냐."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조금 있으면 너도 저 대열에 아무렇지도 않게 끼게 될 거야."
  "어디 가서 굳이 떠벌리긴 창피하지만, 나도 종종 타의로 진흙탕에 발을 담그곤 하는걸."
  "결국 너도 공범이 되어 갈 텐데 뭘."

  아니,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우리 엄마 말버릇 중 이런 게 있다. "내가 '이렇게'(임의로 계급을 나누자면, 우리 집은 서민도 아니고 하층민 쪽에 속한다-_-;) 살고 있긴 해도, 적어도 난 멀쩡한 사지로 떳떳하게 일해서 너희들 가르치고 우리 식구들 먹여 살리고 있잖니? 나중에 너희들 다 크면 난 내가 받은 만큼 사회에 되돌려주면서 살 거야. 너희도 그렇게 사는 게 맞고." 나는 우리 엄마 딸이 맞는가 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저런 말을 하면서 날 가르치려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혹 머리가 굳은 꼰대들과 진흙탕에서 같이 구르는 일이 생기더라도, 지금 내가 가진 마음(신념?)만은 잃고 싶지 않다. 그런데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나의 노력까지 싸잡아 부정하며 자신들과 같은 인종이 될 것을 종용한다. 물론 살면서 적당히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그러니까 난 정언 명령에 따라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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