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빈소에서 우리 관계가 아무리 각별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말해줄 사람이 없는 것이 그 각별함을 어떻게 무화시키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기억은 너와 내가, 우릴 둘러싼 공동체가 하는 것.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좆도 아닌 관계가 되는 사이는 얼마나 억울한가. 성소수자들이 결혼할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이성애 질서에 편입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좆도 모르는 소리. 그것은 그와 나의 역사, 나의, 우리의 삶과 역사의 존재 여부를 인정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다.


- 엄기호 트위터(@uhmkiho), 2012년 10월 30일


  지난해 지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떴다. 나이가 몹시 젊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막 시작한 직후라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던 사람이다. 슬픔은 둘째치더라도, 내 의지로 속하게 된 집단에서 직접 교류했던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처음이라 꽤 충격을 받았다.


  그를 알던 다른 이들과 장례식에 다녀온 이후 관계와 사회성은 내게 가장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았다. 약간 강박적일 정도로. 어떤 집단도 공유하지 않고 나와 일대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몇 명 있다. 만약 내가 갑작스럽게 죽어버린다면, 그것은 곧 그들과 나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장례식에 오거나 오지 않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죽은 사람은 서운해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한참 동안 내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 때, 그들이 그것을 절교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슬픔을 공유하거나 생전의 추억을 공유할 사람이 없어 가슴앓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대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엮어 놓고 싶다는 건 순전히 내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슬슬 준비하려고 한다. 내가 그들의 집단에 편입되거나, 그들을 나의 세계에 끌어들이거나. 어쩌면 둘 다일수도 있고.


  지인을 미워했었다. 함께 일하면서 상처를 꽤 많이 받았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받았지만 끝내 마음을 풀지 않았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는 다 털어버리려고 한다.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 준 데 대해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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