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꿈에 오페라의 유령을 현대 배경으로 바꾸어 재해석한 리메이크작을 보았다. 카를로타가 피앙지와 듀엣하고 나서 아리아를 부를 때 카를로타의 머리 위로 걸개가 떨어지는 장면까지는 원작과 비슷했다. 카를로타가 멕 지리에게 짜증내는 장면이 추가되긴 했다. 꿈 속의 카를로타는 제법 미인이기까지 했다. 디즈니판 인어공주의 바네사 같은.


  그런데 팬텀이 자신의 범죄를 만족스럽게 지켜보다가 휙 돌아서서 퇴장할 때 무슨 직장인용 배낭 같은 걸 메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3kg짜리 노트북 하나 정도는 널널하게 들어갈 것처럼 크고 보기 싫은 배낭이었다. 수트 핏이고 뭐고 눈물날 정도로 섹시했는데 배낭이 너무 끔찍해서 옥에 티 정도가 아니었다.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던 무용수들과 오페라 단원들은 그 말도 안 되는 배낭을 보고서 저 패션 센스는 대체 뭐냐며 팬텀을 비웃기 시작했다. 그 뒤로 팬텀이 급속하게 찌질해지더니 급기야는 라울에게 징징거리기까지 했다. 극이 원작과 완전히 다르게 막나가기 시작한 것. "나의 팬텀은 이렇지 않아!!!"라고 욕하다가 깼는데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꿈 속의 리메이크작이 끔찍했던 이유가 또 있는데, 일단 한국어로 번안된 작품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에 한해 번안 공연을 싫어하기 때문에 참아 주기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팬텀 목소리는 중후함과 카리스마를 엿 바꿔먹은 듯 째지고 듣기 싫은 목소리였다.


  꿈에서 깨서 약간 멍때리고 있다가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까지 앞으로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는 데 진심으로 안도했다. 내가 보는 게 번안 공연이 아니라는 데에도 감사했다. 누구랑 헤어지거나 애인과 헤어지는 꿈 아니면 자고 일어나서 저렇게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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