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 영화들에 어떤 큰 주제가 하나 있다면 그건 현실과 환상 간의 거리일 거라고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그건 내 영화에서 자주 제기되는 문제죠. 그걸 요약한다면 결국 내가 현실을 미워한다는 것으로 귀착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실이야말로 우리가 맛있는 스테이크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 아닙니까?

 

  그런 생각은 나의 유년 시절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때 계속 영화 속으로 도피했거든요. 난 매우 민감한 소년이었고 '영화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절에 성장기를 보냈죠. 그 때는 모든 훌륭한 영화들이 다 나왔지요. <카사블랑카>가 개봉됐을 때와 <양키 두들 댄디>─그 모든 미국 영화들 말이에요─ 프레스턴 스터지스 영화들, 프랭크 카프라 영화들이 개봉되던 때를 기억합니다.

 

  난 늘 그런 영화들 속으로 도피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집을 뒤에 남겨 두고, 또 모든 고민과 학교와 가족과 모든 것을 남겨 두고 극장 안에 들어가지요. 거기에는 멋진 저택이 있고 흰색 전화가 있지요. 여자들은 사랑스러웠고 남자들은 늘 적당한 재담을 할 줄 알았어요. 모든 게 웃겼지만 언제나 결과가 좋았고 영웅들은 진짜 영웅들이었어요. 모든 게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게 내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내 나이 또래의, 아직도 그런 인상을 털어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삶에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요. 그들은 여전히─나이가 들어서도 말이에요. 50대와 6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말이죠─ 삶이 왜 그런 식으로 풀리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현실이라고 믿고 느끼고 희망하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왜 진리가 아니며 왜 현실이 훨씬 매섭고 추악한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극장에 앉았을 때 당신은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했죠. 그냥 영화에서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뭐 난 저런식으로 살진 않지'라고 생각은 합니다. 난 브루클린에서 살고 가난한 동네에서 산다. 하지만 세상에는 저런 집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그들은 승마를 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을 만나며 밤에는 캌테일을 마신다. 그건 그냥 다른 삶이죠. 그리고 그런 것들은 신문에서 읽는 사실들에 의해 더욱 확고해집니다.

 

  즉, 마치 영화 속에서처럼 나와 다르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건 너무나 나를 압도하는 것이어서 난 한번도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것은 내 작품 속에 항상 나타납니다. 현실을 통제하려는 욕망, 현실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론이 나도록 하는 거요. 작가가 하는 일은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을 창조하는 겁니다. 당신은 당신이 창조해 내는 사람들을 좋아하죠. 그들이 입는 옷, 그들이 사는 장소, 그들이 말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몇 달 동안 그런 세상 속에서 살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동작을 하고 당신은 그 세계에 속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난 내 영화 속에서 늘 이상화된 삶의 위대함, 또는 환상과 괴로운 현실 간의 대결에 대한 느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느낍니다.

 

- 스티그 비에르크만, <우디가 말하는 앨런>, 한나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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