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저녁 7시 30분에 한겨레 청암홀에서 열린 <당신들의 대통령> 저자와의 대화에서 의외(?)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김진호 선생님의 발제(?)였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박정희·노무현의 메시아정치를 둘러싼 담론의 추이' 정도가 되겠다. 보통은 '노빠'를 비웃기 위해 정치의 영역에 '종교'를 끌어들이곤 하는데, 비아냥이나 농담이 아닌 진지한 종교적 해석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박정희의 담론적 양상이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이후, 노무현의 경우 2009년 서거 정국 이후이다. 후자는 머리가 약간 굵어지고 나서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이해가 쉬웠다. 전자는 초월적, 후자는 내재적 성격을 지닌다. 초월적 메시아담론의 대중은 수동적이고, 내재적 메시아담론의 대중은 적극적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역시 2009년 서거 정국이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꽤 많은 사람들이 국민장에 참석했고, 지인 중에도 간 사람이 많았고, 슬프고 분노하는 인파에 의해 촛불시위가 재현될까 우려한 정부에서 경찰을 투입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또한 국가가 정한 장의위원회가 아닌 수많은 주체에 의해 조문소가 설치되었다.

 

  '적극적'이라는 단어에 천착해서 사족 같은 질문을 했다.

 

  "시민의 자발적인 연대보다는 소수의 명망가들에게 크게 기대어 투쟁이 전개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지영의 의자놀이 논란일 것이다. 공지영은 최근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가필과 저작인격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소란으로 치부했다. 이에 공지영의 선의를 의심하지 말라며 동조하는 목소리도 컸다.(사실 여기서 '공지영을 옹호하는 축은 자칫 공지영이 삐치기라도 해서 쌍차 투쟁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하고 그와 더불어 쌍차 투쟁이 시들해지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나의 삶을 알아서 바꾸어 줄 메시아를 기대하는 유권자의 심리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대중이 정치를 수용하는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일종의 환상이고, 박정희 정권 당시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게 아닐까?"

 

  '적극적'이라는 말이 꼭 긍정적으로 쓰이지는 않았고 그저 양상을 드러냈을 뿐이며, 문제의식은 같다는 답을 들었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형태의 노무현'이 등장해 '유사노무현적' 정치행위를 하는 세태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전화로 이 얘기를 했더니 애인이 다른(실은 같은) 해석을 내놓았다. 자신을 신격화하려 무진 애를 쓴 박정희의 능동성, 대중의 필요에 의해 메시아로 격상된 노무현·안철수의 피동성에 차이가 있다는 것.

 

  이러한 현상의 이유에 대해서도 꽤 길고 유익한 설명이 있었는데 졸리다. 내일 마저 덧붙여야겠다. 책도 읽지 않고 저자와의 대화 행사에 갔는데 어서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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