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조별 발표를 한 번 해 보면 알 수 있다.

  2. 조별 발표를 할 때 고학번에게 조장 자리를 맡기는 이유는 대충 이렇다. 대부분의 고학번이 취업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이므로 학점의 노예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학점의 노예들은 과제를 절대 허투루 하지 않으며, 따라서 조별 발표를 할 때에도 더 많은 책임감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덧붙인다. 그러나 윤리학 시간에는 고학번 조장이 발표를 말아먹었고, 한국정치외교사 시간에는 저학년 조장이 발표를 말아먹었다. 엄마 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결국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게 답.

  3. 복학하면 고학번, 고학년 축에 든다는 게 조금 속상했는데, 발표를 두 번째 말아먹고 나니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조별 발표를 또 할 일이 생기면 무조건 조장은 내가 맡겠다고 나서야겠다. 다른 건 몰라도 해야 할 일을 분배하고 칼같이 연락 돌리는 일은 잘 할 수 있다. 감투를 씌우면 책임감을 느끼는 인간형이니까. 책임감 없는 인간에게 일을 맡기고 불안에 떨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짊어지는 편이 낫다.

  4. 오후 8시까지 발표에 쓸 자료를 올려 달라고 했더니 한 명만 제대로 된 자료를 올렸다. 한 명은 급하게 쓴 티가 역력한 '짧은' 자료를 올리고, 한 명은 30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가 쓸모없는 자료만 던져 놓고 사라졌다. 과 활동 때문에 바쁘다는 게 이유였다. 어찌어찌 취합해서 새벽 네 시까지 레포트를 정리하고 PPT를 만들었다. 제대로 자료를 모으지도 않았던 조원은 내가 쓴 레포트를 줄줄 읽으며 발표를 망쳤다. 또박또박 읽기라도 했으면 덜 한심했을 것을, 한 줄 건너 한 줄은 멋지게 버벅거렸다. 무임승차자 두 명 중에는 조장이 있었고, 원래 발표를 맡기로 했었다. 내 어처구니는 안드로메다로 특급배송되었다.

  5. 어설픈 무임승차자는 교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내 PPT를 홀랑 주워먹은 계집애와 책임감 없는 조장에게 불이익을 줄 방도가 없었다. 아예 참여를 안 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깨작깨작 도움 안 되는 짓이나마 하기는 했으니까. 자존심까지 인정사정없이 구겨 가며 교수 방에 찾아갔다가 소득도 없이 돌아나오는 길에 엄청난 모멸감을 느꼈다. 다른 게 아니라 점수 때문에 교수를 찾아갔다는 것 자체가 한심스럽고 눈물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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