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좀 시들해진 것 같기는 한데, 바로 옆 나라의 불행이 나의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에 안도하며 묘하게 들떠 있는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든다. 남의 불행을 보며 진심으로 개탄하기보다는 호들갑을 떠는 꼴이 구역질난다. 조선일보에서는 지면 여러 장을 할애하여 일본 대지진을 다루고 있었는데, 마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지면 편집이 거슬렸다. 네이트 베플은 한층 가관이다. 쪽바리들 잘 죽었다느니, 벌을 받았다느니, 운운. 자신에게 공감 능력과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여과없이 드러내는 멍청이들은 차라리 보고 있기가 낫다. 하지만 자기들이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게 싫은 멍청이들이 열심히 자기 포장을 하는 꼴은 정말이지 가증스럽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 안 나? 너희는 어쩜 그렇게 '역사 의식'이 부족하니?"

  그리고 덧붙이기를, '잘 사는 나라'에 보낼 구호 기금을 낼 바에는 자원봉사를 가거나, 그 돈으로 국내의 불우이웃이나 아프리카의 난민을 도우란다.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다. 다달이 진보신당에 5천원, 일달러의 깨달음에 천원, 일다에 5천원씩을 후원하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데, 순전히 경험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저따위로 말하는 인간들 중 정기적인 후원을 조금씩이라도 하는 인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런 말에서는 최소 수혜자를 배려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시혜적 의식까지 엿보인다.

  자기들의 손에 베트남인들의 피가 묻어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멍청이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고. 멍청이들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초대형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하고 지나가서 남한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 베트남인들이 '미제를 등에 업은 학살자들에게 징벌이 내려졌다' 운운하며 비웃어도 우리는 할 말이 없다. 한국인들은 월남전의 피를 먹고 자란 부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고 살아왔다. 그런 주제에 피해 의식에만 단단히 붙들려 있는 꼬락서니를 참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 판국이란 말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고 드라마이지만, 수천 수만 명의 죽음은 어느 순간 그저 숫자로 치환된다. 가공할 재난이 바로 와닿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끔찍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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