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전 Z
국내도서>소설
저자 : 맥스 브룩스(Max Brooks) / 박산호역
출판 : 황금가지 2008.06.12
상세보기

  제목이 촌스러워서 안 보려고 했었다. <World War Z>라고 하면 그럭저럭 그럴듯해 보이는데 <세계대전 Z>라고 하면 촌스러워 보이는 건 사대주의적인 발상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책이 됐든 영화가 됐든 기대를 버리고 봐야 두 배쯤 더 재미있다는 진리를 재확인했다.

  1.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변하여 날 죽이고 잡아먹으려고 덤빈다.
  2. 사소한 접촉만으로도 괴물이 될 수 있다.
  3. 상처가 있는 사람은 편집증적으로 의심한다.
  4. 세계가 지옥이 된다.
  5. 그 와중에 멀쩡한 사람들끼리도 물고 뜯고 다툰다.

  지금 생각나는 좀비물의 공식이 대충 이 정도인데, 저 자체는 충분히 공포스럽지만 금방 식상해진다. 공식은 어디까지나 공식이어야 하고, 어떤 식으로 공식을 응용해서 읽는 사람의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에 달렸다.

  책날개의 작가 이력을 보면 작가가 과거부터 꾸준히 좀비물에 손을 대 왔음을 알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좀비물의 공식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거기에 기대려고만 하지 않았음이 보인다. 굳이 깔끔하게 끝내려고 애쓰지 않은 짧은 이야기가 반복되니까 읽기 편했다. 좀비가 인류를 잠식하고 평화로운 생활이 어떻게 엉망이 되었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도 충분히 끔찍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나름대로 과거의 삶을 되돌리고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열하면서 완결성을 보이려고 하고 있다.

  각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쓴 단편이 많다. 물론 상황에 대한 이해가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을 북한 에피소드를 보며 느끼긴 했지만, 신종 질환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의약품을 팔다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 의약품 회사 에피소드는 마음에 들었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좀비의 창궐과 전쟁의 발발로 걸레짝처럼 변한 지구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언급하면서 인류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려 애쓴 점도 주목할 만하다.

  <베리드>를 보고 났을 때의 만족감 비슷한 것을 느낀다. 현실 풍자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 강풀이 싫어서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게 맞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