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는 조금, 듣는 사람이 자기 좋을대로 해석할 수 있는 모호한 선전 문구는 많이. 퇴근 시간 즈음해서 주섬주섬 짐을 싸고 있을 때 텔레마케터실에서 들려오는 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대충 저랬다. 그리하여 전기요금이 몇십만 원 이상 나오지 않으면 큰 효과도 없는 전기 절감기를 최대한 많은 가게에 판다.

  한 단어로 말할 수도 있다. 사기.

  욕설과 고함으로 점철된 항의 전화─그 중에는 왜 월급이 나오지 않느냐고 독촉하던 예전 직원들도 있었다. 불과 한두 달 뒤 같은 처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가 걸려오면 이사는 자리에 없는 척을 했다. 가끔은 전화선을 빼 놓기도 했다. 그나마 쉴새없이 울리는 전화에 꼬박꼬박 응대하던 경리 언니가 서러운 눈물을 찍어내길 몇 번, 결국 병원에 들락거리다 일을 그만두었다. 직원 물갈이는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오래 남아 있는 직원들은 '팀장'이니 '본부장'이니 하는 직함을 달았다. 회사에서 잘리고 몇 달이 지나서 한창 월급 문제 때문에 사장과 이사에게 학을 떼고 있을 때 그 회사 직원이 보낸 문자를 받았는데, 4월 초에는 분명히 새파란 신입직원이었던 사람이 팀장이 되어 있었다.

  구글링해보니 지금은 인터넷 강의 교재 판매로 업종이 바뀐 듯하다. 명색이 회사라는 게 동네 구멍가게와 수준이 비슷하다. 들여온 물건을 다 팔면 다른 물건을 들여와 파는 식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사기 행위에 어떤 식으로든 동참하고 있다는 죄책감이었다. 일주일에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이나 하다니 장하고 기특하다고 TM이모들이 아무리 예뻐해주셔도 별무소용이었다. 찜찜한 기분을 못 이기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던 중 타이밍 좋게 잘리기는 했지만. 아르바이트 하나쯤 그만둔다고 당장 굶어죽지는 않으므로 결단이 더 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일을 그만두었을 때 당장 생활이 힘겨워지는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혹은, 각고의 노력 끝에 정말 어렵게 들어간 회사라면 어떨까. 내부고발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자리를 박차고 미련 없이 나올 수는 있을까.

  10년, 20년 뒤에도 2010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시절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생활과 살림에 찌들어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지금도 난 충분히 속물인데. 다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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