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이야기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민가영
출판 : 책세상 200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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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기 전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입문 서적으로는 이 책이 더 괜찮아 보인다. 물론 미리 방대한 지식에 헐떡이고 불편한 기분을 양껏 느낀 덕분에 이 책은 좀 쉬엄쉬엄 읽을 수 있었다. 얇고 삽화가 많은 책은 가볍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료하고 마냥 가볍지도 않아서 즐겁게 읽었다.
  농경 사회가 시작된 이후 쭉 이어져 온 남성 기득권을 공격(?)하는 데 많은 장수를 할애하고 있다. 노동 문제와 여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관시킨 파트는 생소한 부분이라 더 관심있게 읽었다. '여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평가절하되고 있는지, 여성의 임금이 왜 통상적으로 남성보다 적을 수밖에 없는지(남성인 가장이 가정을 부양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전장에 나간 남자들을 대신해 산업 예비군으로서 일터에 나간 여자들을 어떻게 가정으로 돌려보냈는지(광장공포증), 사회 규범이 여성을 가정에 묶어놓음으로써 어떻게 사회인을 육성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지, 기타 등등. 부끄럽게도 KTX 여승무원들이 어떤 식으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는지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대로 이해했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의 함의를 찌른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정부가 내놓은 출산 장려 정책은 (...) 셋째 아이를 낳으면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국가가 '어떤' 출산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고 싶은지를 (...) 보여준다. 즉 정상적인 가족 테두리 안에서 양육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에 대한 지원인 것이다.
  ……
  가족은 시대와 개인의 요구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지 깨지거나 해체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위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
  여성주의자들은 가족의 '정상성'이어떻게 사회적 배제를 만들어내는지를 제시하면서 가족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을 해체할 것을 주장한다.

  남성인 가장을 필두로 한 가부장제 사회의 가족, 산업화 시대에 최적화된 핵가족만이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이자 사회의 재생산 도구로 인식된다는 말이다. 농경 사회의 대가족이 서서히 사라지고 산업화 시대에 들어 핵가족이 나타날 때에도 말세니 뭐니 하면서 탄식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몇 세기 전부터 끊임없이 말세론과 지구 종말론이 대두해 왔어도 세상은 아직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
  결국 사회 통념, 성역할, 규범 등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며, 낡은 것들을 제때 용도폐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이다. 여성학은 세상을 주류가 아닌 시각에서 읽기 위한 방편 중 하나이며, 자기 안의 타자성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페미니즘의 도전>의 메시지와도 어느 정도 겹친다.

진보집권플랜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조국,오연호
출판 : 오마이북 201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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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에 살아가는 개인을 위한 삶의 지침서 같은 것이라면, <진보집권플랜>은 그런 사회를 뜯어고쳐보는 것이 어떠냐고 도전장을 내미는 책이다. 책 제목 한 번 섹시하게 잘 뽑았다. 집권은 중요하다. 하다못해 목소리를 내고 뉴스 귀퉁이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는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정당의 존재 의의가 권력 획득이기 때문이다. 정당과 시민단체의 본질적인 차이점이 그거다. 지금의 진보신당은, 미안하지만 시민단체보다도 존재감이 없다 하더라도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책 읽고 강연 들으면서 뿌옇게 부유하던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정치공학적인 노림수는 나중 문제고, 유권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여 신뢰를 얻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유권자는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을 만한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한다. 우리 학교를 예로 들자면, 샤우팅이 떨어지고 터미네이터가 당선된 이유가 있다. 백만 개가 넘던 촛불도 꺼지고 촛농도 다 굳은 상황에서, 배고프고 추운 사람에게 MB정권 타도니, 독재정권 물러가라느니,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느니 해 봤자 소 하품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한나라당 계열을 제외한 '진보 진영'이 연대해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용이하게 만드는 게 좋겠다는 조국 교수의 말에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는다는 데 놀랐다. 민주당 지지자가 더 많으니까 무조건 '민주당'으로 야권 연대를 해야 한다는 멍청이들 말고(6월 지방선거 때 노회찬을 개새끼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얻은 홧증이 아직 덜 풀렸다-_-), 조국 교수처럼 진보 정당의 기반이 몹시 취약하다는 걸 인지하는 사람이 합리적으로 연대를 하자고 하면 못할 게 뭐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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