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전권, <눈물을 마시는 새> 전권, <피를 마시는 새> 1권부터 6권을 몹시 싸게 구했다. 눈마새와 피마새는 양장이다. 싸게 구했다고 해도 다 합치면 6만원이 넘어가지만. 저번 달 가계부를 보니 내가 간식 먹는 데만 대략 5만원 가량을 썼던데, 책을 왕창 질렀으니 이번 달에는 간식을 끊어야겠다. 마음이 배부르니 참 좋다고 위안을 삼아야지. 책 비싸서 못 산다고 징징대놓고 덕질에는 아낌없이 돈을 쏟아붓는 정도의 퀄리티. 나도 어쩔 수 없는 영도빠인가보다. 이제 <드래곤 라자>, <퓨처 워커>, <그림자 자국>만 사면 된다. 어쩌다보니 드라 세계관의 책들만 남았다.

  집에 있는 <퇴마록>은 오히려 전부 팔아버릴까 고민하고 있다. 가지고 있을 이유는 별로 없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삼십대 청년들을 환독에 빠뜨리거나 빠뜨릴 뻔한 주범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목도 많고, 후속작도 별로 재미가 없었고, 가지고 있으면서 잘 읽지도 않는다. 그런데 막상 팔 생각을 하면 썩 내키진 않는다. 거기 깃든 추억이랑, 헌책방에서 한 권씩 사 모을 때의 뿌듯함 때문에.

  예전에는 이영도와 이우혁 중 누굴 더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이라면 대답할 수 있다. 당연히 이영도다. 에반게리온 팬들이 우러날 대로 우러난 에바를 아직도 열심히 우려먹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이다. 파도 파도 끝이 없다.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다. 이영도 자신이 후치를 흑역사로 여기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는 인물의 몸을 빌어서 연설을 한다. 영도월드의 캐릭터는 살아 움직이기보다는 타자의 장기판 위에서 그의 의지에 따라 죽고 산다. 읽다 보면 그 점이 참 거슬린다. 하지만 인물들이 어쩜 하나같이 그렇게 매력적인지. 우리 편도 나쁜 편도 버릴 사람이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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