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제목과 내용이 반대되는 글. 그냥 푸념이 하고 싶어서 쓴다. 뭐, 생각 정리하는 기록장으로 만들어 둔 블로그인데다가 방문자가 많아야 하루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냥 나 쓰고 싶은 대로 쓰련다. 읽히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라 쓰이기 위해 쓰인 글이지롱 꼐이!

  2008년 여름, 민언련 언론학교 강의 중 홍세화씨는 이렇게 말했다. "계급적 이익에 따라 투표합시다." 이명박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하며 한나라당은 해체되어야 하고 조중동은 폐간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 외에는 정치에 대해 모호한 입장밖에 가지지 못했던 그 때 나는 몹시 감명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거푸 읽은 후 홍세화씨를 줄곧 나의 우상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전에 "내 생각은 정말 나의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미 흐물흐물 녹아 있던 나는, 우수에 젖은 눈을 하고 학교 앞 김치찌개집에서 소주잔과 담배를 각각 한 손에 들고 사회의 부조리를 역설하는 '멋진 운동권 선배'에게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새내기와 같았다.

  그럼 어느 당을 지지할 것인가. 한부모 가정 노동자의 자녀로서 사다리를 기어오르긴 일찌감치 포기했다. 유일하게 내세울 만한 '스펙'인 내 '학벌'은 썩은 동앗줄은 아닐지라도 금동앗줄은 못 되었다. 선택은 쉬웠다. 때마침, 당 게시판이 보고 싶어서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가입했다가 얼렁뚱땅 당원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평등, 평화, 생태, 연대를 지향한다는 슬로건도 마음에 들었다. 사람보다는 동식물에게 관심이 더 많았고, <녹지>를 몇 권 읽고 페미니스트가 될락말락하던 시점이었다.

  사실 이 모든 설명들은 엄밀하지 않다. 그저 이 쪽이 다른 쪽보다 '착하고 멋져 보였기 때문에' 입당했을 가능성이 맹세코 더 높다.

  왜 민주당이 아닌가? 촛불시위에 뒤늦게 숟가락을 갖다 올려놓으려는 꼴이 무척 가증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내가 열혈 촛불키드였다는 점에 주목하자. 구 시청 앞 라면산성 옆에 서 있던 민주당의 초록색 천막을 보며 코웃음을 쳤었다. 왜 민주노동당이 아닌가? 민노당계 운동권 총학생회가 회계 스캔들에 휘말려 불과 한 학기만에 사퇴했던 사건도 있었거니와, 주워들은 가락 탓에 민노당이 '구제 불가능한 종북주의자 집단'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이 떨어져나오기 직전 당내의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이 훼손되었니 어쩌니 하는 건 잘 몰랐다. 학기초에 진보신당 학생모임 주최로 열린 진중권 강연회에서 NL이니 PD니 하는 게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이론 같은 것은 알지도 못했다. 지금도 잘 모른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노예처럼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 자본주의가 붕괴될 날이 오긴 올까 싶기도 하다. 말로만 좌파연하면서 꽤나 직관적이고 나이브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그 안에서 남의 손발을 짓밟고 사다리를 오른다. 사다리 끝까지 올라 호위호식하는 사람들이 사다리 밑에서 손발을 주무르며 억울해하는 이들에게 자기 몫을 나눠주는 건 극히 당연한 일이다. 손발의 힘이 세기 때문에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었던 게 아니다. 그런데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니 김용철 변호사는 이게 우파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더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으악 이렇게 써 놓으니까 정말 멍청해 보이잖아.

  아무튼 반쯤 허영심 때문에 입당했지만, 지금은 진보신당이 내 살림살이를 좀 펴게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매달 꼬박꼬박 당비를 낸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있는 엘리트라는 오만한 자부심만 만족시키면 그만인 얼치기 대학생이기 이전에 몹시 가난한 대학생이다. 우리 가족은 다행스럽게도 어정쩡하게 가난하지 않고 많이 가난하므로 연옥 귀퉁이에서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1년 반만 있으면 여기서도 쫓겨나가야 할 처지이다. 어정쩡하게 가난해져서 지옥불에 발을 들일 날이 머지않았다. 나 같은 처지에 놓인, 그리고 곧 그렇게 될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복지 국가로 반 걸음 가까이 다가가면 그저 다행스럽겠다. 내 생전에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럴 날은 아마 안 올 것 같다.

  저번에 나간 학생모임에서는 "진보신당이 정신교육을 안 시키고 '민주적'으로 토론을 할 수 있게 놔둬서 정말 좋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기에 대해서 난 회의적이다. 가뜩이나 존재감 없는 당인데,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신규 당원/지지자 유입률은 미미하거나 아예 0으로 한없이 수렴할지도 모른다. 옛날처럼 새로운 사람이 입당할 때 엄격한 면접 절차를 거친 뒤 빡세게 정신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게 아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와 부의 재분배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세련된' 방식으로 공론화되어야 한다. 파이가 백날 커져봤자 떨어지는 부스러기 크기는 똑같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정당의 존재 의의가 권력 획득인 이상 어떻게든 의석을 얻으려고 애써 보아야 한다. 당원들끼리 당의 강령이 어쩌고저쩌고 백날 떠들어봐야 당 바깥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와, 뱉자마자 부끄러워지는 글은 이게 처음이다. 보통은 아무리 짧아도 하루 정도는 지나야 오그라드는 손발을 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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