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Lucid Fall) - 레미제라블


  루시드 폴 노래는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안 듣게 된다고 생각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4집을 듣고 순식간에 팬이 되었다. 다른 음반이랑 같이 몰아서 토막리뷰만 쓰고 끝내려고 했더니,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애정이 샘솟는지라-_-; 결국 줄글 감상을 쓴다.

  신기한 앨범이다. 리스너들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정말이지 버릴 곡이 하나도 없'고, 노래 하나하나가 반짝반짝 빛이 나서 들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질릴 때까지 듣고 싶은데, 계속 들으면 진짜로 질려버릴까봐 겁나서 아껴 듣고 있다. 조각케이크를 먹을 때 딸기나 초콜릿 장식을 맨 마지막까지 남겨 두는 마음하고도 비슷하다.

  박애주의자가 되고 싶다고 입으로만 열심히 떠드는 나와 달리, 사람은 물론 아주 사소한 사물들까지 애정어린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세상은 냉소의 대상이 아니라 환희와 축복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저 부럽고 경이로울 따름이다.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으면서도 <Live Forever>를 쓴 노엘 갤러거가 그렇고, <도자기>와 <사금일기>를 그린 호연님이 그렇고, 루시드 폴이 그렇다. 전곡을 제대로 들어 보지 않아서 이전 앨범에서 루시드 폴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4집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이제부터 역주행할테다!! *_*)

  작은 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타이틀곡 <고등어>에 가장 잘 드러났다. 치킨집 간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닭다리를 들고 웃는 닭 그림은 우스꽝스럽다. 생명을 내어 주기를 기꺼워하는 존재가 대체 어디 있느냔 말이다-_-; 하지만 <고등어>를 들으며 이렇게 냉소하기는 어렵다. 노랫말에서 고등어를 화자로 취하고 있기는 하나, 기실 이 노래가 '가난한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을 지킬 수 있었던 고등어에게 바치는 감사 인사나 다름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 루시드 폴, <고등어>

  나 같은 사람이 식탁에 올려진 고등어의 속살에만 관심을 갖고 젓가락을 놀릴 때, 누군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고등어의 눈을 보며 이런 가사를 썼다. <벼꽃>도 마찬가지이다. 보통은 추수철이 가까워 통통하게 익은 낱알에만 관심을 갖게 마련이지만, <벼꽃>에서는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을 꽃피우는 벼꽃의 소회를 그려내었다.

  <평범한 사람>은 익히 알려진 대로 용산 참사에 대해 쓴 곡이다. 어마어마한 슬픔을 담담한 가사 몇 줄에 녹여 가슴을 울리는 것이 이런 식으로도 가능하구나 싶다. 가사 몇 줄만 추려서 옮기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이다. 노래를 어떻게 감상하느냐는 청자 마음이겠지만, 적어도 이 노래만큼은 노무현을 떠올리게 한다는 관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단숨에 '신'의 자리에 오른 사람과('올곧고 선량한 시민'들의 뇌리에서, 대추리 주민들의 삶과 김선일 씨의 죽음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사소한 나머지 기억에조차 없겠지-_-), 삶을 얻고자 옥상에 올랐다가 죽음밖에 얻을 수 없었던 소시민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레 미제라블 Part1>과 <레 미제라블 Part2>도 용산 참사를 다룬 노래가 아닐까 했는데, 광주 항쟁을 다루었다는 말이 있구나.

나를 이렇게 두지 말아요
텅 빈 심장은 얼어붙을 것 같은데
손을 내밀면 문을 열어줘요
세상에 섞일 수 있게

- 루시드 폴, <유리정원>

  앨범 전체가 이런 맥락으로 흘러간다. 때로는 외톨이가 되어, 때로는 슬픔을 견디는 지인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상처를 핥아주는 것이다. 모종의 사정 때문에 내내 안팎으로 가시를 세우고 살았는데, 이번 앨범 들으면서 정말 울 뻔했다.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아무도 내게 기대지 않도록 홀로 오롯이 살겠노라는 내게 하는 자상한 당부 같았다. 넌 그저 아무에게도 상처받고 싶지 않을 뿐이야, 라고.

스쳐가는 말이라도 그렇게 얘기 말아요
나에게 그대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나에게는 모질게 얘기 말아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 루시드 폴, <그대는 나즈막히>

  4집을 듣고 있으면 햇살 좋은 겨울 아침이 떠오른다. 얼굴에 와 닿는 칼바람이 마냥 따갑지만은 않은 것은 옹색한 햇볕이나마 나를 달래 주기 때문인 것처럼, 갑갑한 현실이 마냥 팍팍하지만은 않은 것은 이런 노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호들갑스러울까?

사랑한다는 말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눈물나게 아름답다는 말
시간이 흘러 나도 누군가를 만나면
듣고 싶어요
이런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말

- 루시드 폴, <외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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