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뱅이의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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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마쓰모토 하지메 (이루,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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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모토 하지메 입국 금지 기념은 아니고,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다가 타이밍 좋게 집었다. 읽고 있는 책이나 듣고 있는 수업에 의도하지 않은 연결 고리가 생기면서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 때처럼 즐거울 때도 드물다. 물론 그런 기분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지만.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먼저 (1) 안락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 얽매인 생활을 누리는 것을 포기하고 (2) 지역 공동체를 육성함으로써 소비에 얽매이지 않고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단, 어디까지나 먹고 살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하며, 타인이나 기관에 의존하며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또한, (3) 데모의 속성이 '일탈'이라는 데 주목하여, 데모의 놀이문화화를 통해 엄숙주의를 탈피할 수 있다. (1)~(3)은 연계되어 있을 시에 가장 폭발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3번이었다.(빨갱이는 어쩔 수 없다-_-;) 선거 기간에 유세 명목으로 벌이는 길거리 집회는 제지받기는커녕 오히려 보호받는다는 점에 착안해서, 준법에 얽매이지 않고 법의 맹점을 찾아내어 권력을 조롱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걸 보고 탄복했다. 2000년대 초반에 대학과 자본의 결탁을 막기 위해 학내에서 수차례 집회를 열고, 학생들도 그에 열렬히 호응했다는 일화도 인상적이었다. 우울한 것은, 이것도 대학 구성원이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이미 학생들이 친기업과 취업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고, 학생 운동과 파업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며, 학교 차원에서 친기업 '기초필수' 과목을 개설하는 상황이라면, 팔뚝질을 걸러낸 유쾌한 집회조차도 애초에 학생들의 지지를 받으며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그렇다. 바로 우리 학교 얘기다-_-)

  잘난 듯 어려운 말을 곁들여서 감상문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실은 글을 쓰면 쓸수록 자신이 점점 바보처럼 느껴진다. 나름대로 책을 요약하니까 엄청 딱딱하게 보일 뿐이지, 사실 책 전체에 진지한 맛은 하나도 없다. 저자는 공산주의니 시민 운동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 시큰둥하고, 무엇인가를 조직해서 혁명을 해야 성공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는 대놓고 콧방귀를 뀐다. 나는 이 책에서 시민 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나아갈 길을 읽었지만, 오히려 저자는 이런 관점에 별로 동의하지 않고 당황스러워할 것이다. 그저 사람들이 모여서 즐겁게 뭔가를 했다는 데에만 만족할 거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운동도 즐겁게 해야 하고, 삶도 즐겁게 살아야 하고, 뭐든지 즐겁게 해야 한다. '당위'라는 마취약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나니, 집회를 사전에 신고하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해도 용인되는 일본과, 사실상 집회를 허가제로 운영하는 한국의 모습이 대비된다. 더불어 일본에는 데모를 즐기며 세를 불리는 시민이 있고, 나라 망칠 것들이라고 시위대에게 호통을 치는 꼰대들이 적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독일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일본이 부럽다. 젊은이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타박받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똑같지만, 적어도 저 쪽은 올바른 법치주의가 무엇인지는 아는 것 같다. 헌법상에 보장된 내 자유 내놔! 하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장난스럽고 유쾌한 운동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입국을 금지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온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운동가도 입국을 금지시키는 더러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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