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상에서 너무나 많이 거론되어, 이제는 '쉰 떡밥'이 되어 버린 '박재범 사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그룹 2PM의 리더 박재범이 자신의 myspace(한국의 싸이월드와 비슷한 웹사이트)에 푸념처럼 늘어놓은 비속어는,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인터넷 곳곳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급기야 박재범이 2PM을 탈퇴하기까지는 나흘이라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박재범이 2PM을 탈퇴하자, 분노에 찬 팬들은 최초 제보자로 지목된 어떤 네티즌을 공격하기에 이릅니다. 팬들에 의해 학교, 집 주소, 전화번호까지 모두 밝혀지고 두려움에 떨던 그는, 자신이 자주 가던 커뮤니티에 마지막 글을 남기고 인터넷상에서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이렇듯 누군가의 사생활이 불특정 다수에게 의도치 않게 알려지는 일, 시쳇말로 '신상을 털리는' 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행해져 왔습니다. 국내 최대의 커뮤니티인 DCinside의 모 갤러리나, 구구절절이 억울한 사연이 하루가 멀다 하고 투고되는 '네이트 판'에서는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일이기도 하죠.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누군가의 '신상을 털어' 그의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위협하는 행위는, 과연 '정의로운 사람들'이 내리는 '단죄'일까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의 '신상을 털며'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신상을 털리는' 일이 내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구글에서 자신이 자주 쓰는 이메일 주소나 아이디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을 누구라도 뒤져볼 수 있다는 데 경악하게 될 것입니다. 가끔은 본명, 휴대전화 번호, 학교와 학과, 집 주소와 같이 치명적인 개인정보가 검색되기도 하지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타인의 신상정보를 캐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재림은 소설 속의 일이 아닌 현실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인터넷 상에서의 행적과 개인정보를 찾아내어 뿌리면 됩니다. 인터넷이라는 원형 감옥 안에서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고 있는 셈이죠. 이렇게 팍팍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참된 의미의 전자 민주주의와 사이버 아고라를 꿈꿀 수 있을까요?

  * 2009년 9월 15일 작성.

  덧붙임. 타블로와 타진요 때문에 인터넷상에 한 차례 광풍이 지나갔다. 상황은 박재범 사건 당시보다 전혀 나아진 바 없다. 자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무죄추정의 원칙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용의자'를 정의의 이름으로 사형(私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시의 눈길을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자'에게만 한정할 때에는 '그나마' 명분이라도 있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머니에게 지하철 한복판에서 머리채를 휘어잡힌 여중생에게, 그 당황스럽고 울고 싶은 상황을 타의로 전국에 중계당해야 하는 이유가 과연 있는가? 정의의 이름 운운하는 건 그야말로 개소리이다. 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깡패짓을 자타칭 '사이버 자경단'이 자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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