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1학기 개강을 하면 으레 CC가 몇 쌍씩 생겨나 있다.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남선배-여후배의 조합이다. 그들이 CC가 되는 과정에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의 애정만이 100퍼센트 작용하지는 않는다. 어떤 선배가 새내기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면, 학과 안에는 그들을 응원하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아니, 말은 바로 하자. 새내기를 노리는 선배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새내기의 의사는 많이들 무시되곤 한다. 과 생활에서 실무를 맡거나 과 생활을 오래 해서 발언권을 많이 갖고 있는 선배일수록, 새내기가 구애를 거절하기는 힘들어진다. 선배를 거절하면 학과 안에서의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CC이 되었을 때 학과 안에서 새내기의 입지가 넓어지느냐,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학회장이나 학생회장과 사귄 새내기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과 분위기를 파탄내는 경우도 왕왕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선배와 사귄 새내기는 'ㅇㅇ이 여자친구'로 기억되지,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되지 못한다. 또 CC의 특성상 남자친구와 붙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점점 소외되고 만다. 헤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평소에 과 생활에서 소외되었던 탓에 발을 붙이기 힘들어진다. 성적으로 불미스러운 소문에라도 휩싸이면 고개를 들지 못하는 쪽은 대부분 여자이다. 새내기(였던 후배)는 결국 휴학을 한다. 그럼 선배는……?

  이런 식으로 남선배와 여후배가 CC가 되는 일련의 과정을 몹시 혐오한다. 동등해야 할 연인 관계에도 권력이 작용하는 게 소름끼치도록 싫다. 괜히 CC를, 특히 과CC를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면서 뜯어 말리는 게 아니다.

  2학기가 시작된 지 3주가 다 되어 가는데 갑자기 시기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통쾌한 이야기를 하나 들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발언권을 무기로 억지에 가까운 구애 끝에 새내기를 '쟁취'한 선배가 있었다고 한다. 금방 헤어지긴 했는데, 헤어진 이후에 그 새내기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를 동아리로 데리고 온 것이다. 동아리에서 모습을 감춘 쪽은 오히려 그 선배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내 일이 아닌데도 진심으로 속이 다 시원했다. 장하다, 새내기!

  * 2009년 9월 1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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