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돌아가신 어느 노교수님의 논문을 읽었는데, 이전에 과제를 하느라 논문을 읽을 때 느꼈던 짜증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논문이 술술 읽힐 수도 있다니, 이런 글을 두고 잘 쓴 글이라고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반면 언론사 동기가 누군가에게 청탁해 온 글은 교정 보는 동안 아무도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한 네 문단쯤 읽다가 손을 놓아 버렸다. 그게 좀 쉽게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몇 번이나 쉽게 고친 글이라니, 과연 초고는 어땠을까.
 
  친구가 "글을 읽는 사람의 수준을 중학교 3학년 정도로 상정하고 글을 써야 한다."라는 말을 선배에게 들었다고 한다.(혹자는 '중학교 3학년 정도'라는 표현을 청소년의 인식 능력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여기고 격분하던데, 책을 접하기 쉬운 특수한(?) 환경에 놓인 청소년이 아닌 이상 이해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썩 틀린 비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알고 있는 것을 쉬운 말로 누구에게나 온전히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피드백 회의를 할 때 편집장 언니가, 나는 글을 주무르고 가지고 놀면서 쓴다는 말을 했다. 내 글에는 수사가 너무 많다. 가끔은 글에 넘치는 수사가 글을 수월하게 읽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고민했던 부분이다. 내 글에는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다. 공들여 껍질을 까고 나면 정작 먹을 부분이 얼마 없는 맛없는 오렌지 같다. 생각하는 것이 10이라면, 글로 구현되는 것은 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 긴 글 읽기를 기껍게 만들어 주신 그 노교수님처럼.

  * 2009년 9월 4일 작성. 일부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