쿄코님 블로그에서 '중요 부위만 토막쳐서 가져온다'라는 키워드를 언뜻 주워들은 것 말고는 사전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읽었다. 오뚜기인간 괴담에 나오는 것처럼 피해자의 팔다리만 잘라놓고 유린하는 변태성욕자가 나오는 소설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범한(?) 연쇄살인 스릴러였다. 소설은 범인의 정체를 알려 주면서 시작한다. 또한 책 뒤표지에는 '충격적인 결말', '최강의 반전' 운운하는 문구가 쓰여 있다. 최악의 마케팅은 반전이 있는 작품에 반전이 있다고 떠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도 그냥 피비린내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저 그런 소설일 거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 마지막 장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랬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 소설은 웬만하면 가리지 않고 읽기 때문에 잔혹한 묘사에 대한 거부 반응 없이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시각 신호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발휘할 수 있는 상상력은 제한적이기도 하고.(<악마를 보았다>를 보고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던 건 주어진 시각 정보가 너무 구체적이어서 감정 이입이 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생 처음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으면서 욕지기를 느꼈다.
그러나 결말부에서는 상세한 묘사에서 느낀 불쾌감이 전부 날아가고, 색안경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를 읽었을 때와 같은 우울함도 같이 느꼈다. 난 추리소설(스릴러가 아니다!)을 제대로 읽기에는 멍청하구나. 작가가 여기저기에 떡밥을 던지고 장치를 설치했는데도 전혀 모르고 작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 첫 장으로 다시 돌아가 복기를 하고 나서야 어찌된 영문인지 대강 알 수 있었다.
1. 자신이 살해한 여성들의 매력을 몇 번이고 강조하는 대목 : 이걸 깨달으면 안될 것 같다고 느꼈다는 사족까지 덧붙인다. 사족이 아니라 과잉 친절인 것으로 밝혀지지만. 이미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병적인 관심이 이전에 수차례 강조되기 때문에 대충 어림짐작은 할 수 있다. 범인이 피해자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을.
2. 욕실에서의 자위 장면 : 그러니까, 피해자에게서 도려낸 젖가슴을 자기 몸에 붙이고, 그 모습을 거울로 보면서 자위하는 장면. 거울 속의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로 착각하고 거의 황홀경까지 느낀다. 1번과 연관되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나르시스트인가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구토기를 느꼈다. 하필이면 그 때 계장님이 주신 요플레를 먹고 있었던 건 또 뭔지.)
3. 서술자가 바뀔 때마다 옆에 표시되는 사건 시점
4. 아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음
5. 남편의 존재가 거의 잊혀져 있음
등장인물(특히 마사코)의 심리와 행동에 개연성이 없는 데다가 결말도 충격적이지 않다고 혹평하는 독자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어머니 시점을 굳이 집어넣은 이유는 독자를 교란시키기 위한 이유 말고도, 연쇄살인이 어디서('가족 이기주의')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므로 개연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범인을 미리 밝히는 기법이 자칫 잘못하면 진부해질 수 있음에도 꽤 짜임새있게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