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제국
국내도서>소설
저자 : 이인화
출판 : 도서출판세계사 199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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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제국>은 이상 국가를 건설하려는 정조의 야망을 둘러싼 노론과 남인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다룬 소설처럼 보인다. 저자는 율곡학파인 노론과 퇴계학파인 남인의 유교 사상적 배경까지 설명하며 당시의 당쟁사에 대해 자세하고 신빙성 있게 그리고 있다. 많은 역사소설이 그랬듯 <영원한 제국> 역시 ‘아래로부터의 역사관’을 배격하며, 소수 선각자가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위로부터의 역사관’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소수 선각자는 물론 정조와 조정 신료들이다. 저자가 특히 높이 평가하는 인물은 정조인데, 저자의 정조에 대한 애정은 주인공인 이인몽의 입을 빌려 소설 전반에 걸쳐 표현된다. 강대하고 개혁적인 군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소설은 비단 이 작품뿐만이 아니지만, 이 작품을 다른 소설과 동일 선상에 놓고 평가하기에는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다. 저자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소설 뒤편에 잘 갈무리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강력한 전제왕권을 확립하여 유신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정조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더 나아가 이인몽의 시선을 통해 정조에게 아낌없는 흠모의 시선을 보낸다. 그럴 뿐만 아니라 전제왕정을 수립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적 발전이 160년쯤 후퇴하였다는 파격적인 주장까지 펼친다. 그러나 소설 후반부에서 저자는 “민주주의 시대에는 유신이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유신과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부정한다. 소설 전체의 흐름에 비추어보았을 때 이는 다소 뜬금없는 언급이며 마치 유신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하던가. 바꾸어 말하면 이는 저자가 유신에 대해 찬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을 원천봉쇄하려는 시도이다. 이렇듯 소설의 행간에서 전제왕권에 대한 저자의 향수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느낀다. 또한, 진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과 보수에 대한 은근한 옹호도 읽어낼 수 있다.

  저자는 또한 조선 시대의 상황을 들어 이인몽의 연군 정서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이 현대에 와서는 농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는 하지만 당대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듯, 전제군주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인몽의 세계관 역시 조선 시대라는 특수한 시대적 여건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극단적인 상대주의는 지양하여야 하며, 시대를 관통하여 과거의 사실을 평가할 수 있는 가치―자유, 평등, 박애, 인권 등이 그 예이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조선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이인몽의 세계관, 나아가 이인몽의 입을 빌린 저자의 세계관을 정당화하려 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에 더하여 저자를 고운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역사소설이 가진 특징 때문이다. 역사소설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일반 역사서를 볼 때와 달리 독자들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소설을 읽으므로 작가의 역사관이 독자에게 쉽게 녹아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저자는 졸렬하기까지 한 방법으로 자신의 역사관을 독자에게 주입하려 하고 있다. 소설의 내용이 실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매우 강조하며 소설이 미칠 영향에 대해 회피하려 하는 저자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나아가 작품을 좋은 역사소설이 아닌 흥미 위주의 팩션에만 머무르게 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약점을 더한다 하겠다.

  * 2008년 10월 8일 작성. 수업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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