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늑장부리다가 집에서 늦게 출발했다. 마을버스도 놓쳤다. 파트릭 오번 피아노 독주회를 반절밖에 못 봤다. 바흐는 잘 모르겠는데, 라벨이랑 드뷔시가 참 좋더라. 인상주의라나. 그런데 짧은 식견과 저질 감상을 어떻게 버무려서 감상문을 써야 할 지 걱정스럽다.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상암 경기장으로 달려갔다. 지역구 당원분과 천막 지킴이 하기로 한 날이라 그렇다. 가니까 한국기독교대학 학보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사무국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독교 학교 학생들이라 그런가, 참 착하더라구. 30분 일찍 와서 기다리고 이런 것(비타500)도 사 오고. 돈이 없어서 이것밖에 못 사왔다면서." 음음. 인터뷰하러 갈 때 참고해야겠다. 저런 게 예의로군. 여튼 당원분들이랑 맥주 마시면서 얘기 좀 하다가, 경기장에서 사람들 빠져나올 때쯤에 피켓 들고 1번 출구 앞에서 서 있었다. 눈에 뵈는 게 있으면 좀 쑥스러울 것 같아서 안경을 벗고 피켓 들고 서 있었다. 어깨에 무릎담요 두르고 추레하게 있는데 어떤 분이 사진 찍어가셨다. 헐.
사람들이 다 빠질 때쯤 천막에 들어왔다. 호박고구마랑 어묵 따위의 간식을 주시기에 낼름 다 받아먹었다. 열두시께쯤 되니 다들 가시고 사무국장님과 당원분과 나, 이렇게 셋만 남았다. 그 다음에 누군가 두 분 오시긴 했는데 어떤 분들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모기장 치고, 바닥에 침낭 깔고- 하는 건 내가 안 하고 다른 분들이 다 하셨지만-_-; 여튼 잠잘 채비를 하고 한시쯤에 누웠다. 추울까봐 걱정했는데 배에 핫팩 붙이고 침낭으로 둘둘 말고 자니까 하나도 안 추웠다. 바람이 연신 천막을 때려도 외풍이 들지 않았다. 사무국장님이 봄가을에는 그래도 좀 견딜만하다고 하셨다. 따뜻했던 덕분에 아침 6시까지 참 잘 잤다. 밖에서 짐 부리는 소리 때문에 소란스럽지만 않았으면 아마 계속 잤을 것 같다. 일곱시쯤에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나왔다. 사무국장님이 수고했다고 하시는데, 한 일이 없었는데도 그런 말을 들어서 퍽 죄송스러웠다.
내가 가 본 농성장이라고는 이랜드랑 기륭 두 군데뿐이지만, 이랜드 쪽이 그래도 분위기가 좀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느낌이다. 여자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음, 나도 안다. 이건 편견이다, 편견!) 겨울호 만들 때 취재하러 올 텐데, 내가 겨울호에 이랜드 기사를- 더 나아가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기사를 쓸 일이 없으면 좋겠다. 찬바람이 더 불기 전에 모두들 잘 해결되어서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이 짠하다. 이랜드 쪽 조합원님들은 거의 우리 엄마뻘 되시는 분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