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시간이 남길래 태고의 달인을 하러 갔다. 허름한 주제에 은근히 있을 건 다 있는 학교 앞 오락실에는 놀랍게도 유비트가 있었다. 어두침침하고 낡아빠진 주변 기물들과 어울리지 않는 그 산뜻한 모양새라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연습삼아 한 번 해 볼까 싶었는데, 기계 앞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묘한 열의를 불태우며 게임에 열중하는 남학생을 보고 있자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과하게 수수한 옷차림. 나의 뿌리깊은 편견은 그 남학생이 공대 오덕임이 확실하다고 연신 외치고 있었다. 그 남학생이 플레이하던 곡이 천체관측이라서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옆자리에 한 대 더 있는 기계 옆에서 동류로 보이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뻔뻔하다'고 평한 짧은 미니스커트, 혹은 하늘하늘한 플레어스커트, 적당히 늘어지는 크림색 가디건과 파스텔톤의 셔츠를 걸치고 낮은 구두를 신고 '보편적인 취향을 가진 여대생'을 연기한다. 어떤 사람의 옷차림은 그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나타낸다고 하던가.

  가끔 내가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것을 꿈꿀 때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에 노란 스카프를 매고 시청 앞으로 간다거나 하는 것들. 물론 나의 못된 허영심은 그것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몹시 아가씨다운 미니스커트를 입고 구두를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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