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마지막 시위라고 하는 100회차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처음으로 깃발 밑에 서서 '진보신당 정치캠프 참여자 모임'이라는 한 집단으로 묶여 봤다. 밤을 새우고 돌아오기는 했지만 온전히 시위만 하느라 밤을 새운 건 아니고, 같이 다녀온 사람들이랑 첫차 다닐 때까지 기다려서 놀다가(-_-) 돌아왔다. 초장부터 진압당해서 시위대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나중에는 본대조차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구호다운 구호도 외쳐 보지 못하고 노래도 제대로 못 불렀다. 싱겁다면 꽤 싱거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 물대포에 의해 처음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는 했다. 매우 경미하기는 하지만. 시위가 흐지부지되는 것 같아서 일행이랑 술 마시러 들어갔는데 다리에 온통 파랗게 물이 들어 있었다. 이럴 수가. 난 물대포 맞은 적도 없고 그냥 젖어 있는 길바닥 뚜벅뚜벅 걸어다닌 일밖에 안 했는데. 식겁해서 화장실 가서 박박 씻었는데도 안 지워졌다. 집에 돌아와서 샤워기로 한참 씻었는데도 안 지워진다. 아무래도 목욕탕 가서 불린 다음에 때를 밀어야 할 모양이다.
운동권 사람들(!)은 나와 별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다. 물론 그 분들 연령대가 나보다 좀 높긴(..) 하지만 그래도 그 해박함에는 매번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뭐, 나이는 허투루 먹는 게 아니니까.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적절한 표현을 생각해낼 수가 없어서 표현이 조금 격하고 이상하네. 여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역시 제도권 교육과정에서 막 벗어나 제도권 밖의 지식들을 막 알아가고 있는 내가 낄 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나보다 몇 년을 더 공부한 사람들인데 아는 게 많은 것이 당연하지만 나는 무척 자괴감을 느꼈다. 그저 얌전히 입 다물고 있었다. 흑흑. 이런 젠장. 새삼스럽지만 일단은 책부터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진보신당 깃발 모여 있는 자리에서 지역구 당원분들을 만났다. 내가 항상 씹기만 하는 문자(..)를 돌리시는 간사님이 실은 우리 엄마뻘쯤 되어 보이는 남자분이셨다. 좀 놀랐다. 이름 때문에 당연히 젊은 여자분일 줄 알았는데. 젊은 피가 필요하다면서 다들 심히 반겨 주셨다. 빈말 아니고 나중에 사무실 한 번 놀러가 볼까 한다. 우리집하고도 별로 안 멀던데.
잠을 못 자서 정신이 없다. 원래 잠자리에 좀 예민해하기 때문에 환경이 바뀌면 제대로 잠을 못 잔다. 불편한 자리에서는 웬만큼 피곤하지 않은 이상 제대로 못 잔다. 열두 시 반에 과외하러 나가야 하는데 지금 잠들면 못 일어날 것 같아서 억지로 키보드를 붙잡고 있는다. 한 시로 과외 시간 당기자고 문자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 한 시에 과외하면 집에 일찍 돌아와서 일찍 잘 수 있는데.
올림픽에 묻혀서 마지막 촛불집회는 흐지부지되었다. 조금 허탈하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는커녕 찝찝함만 종로 길바닥에 버려두고 집에 돌아왔다.
한줄요약 : 나는 좌빨인데 왜 파란 물을 들이고 그러나 이 사람아
뭐 논평할 것까지는 없고, 2년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점은 좀 좌절스럽다.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소리를 계속 하고 있다니 발전이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