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나간다는 사람도 없고, 나갈 만한 사람이 전부 연락이 안 되어서 혼자 나갔다. 유쾌한 분위기든 엄숙한 분위기든, 어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내 생각만 하면서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다. 장소가 사전에 공지된 게 아니라서 무작정 청계광장으로 갔는데 사람이 없었다. 시청역도 1호선 쪽 출구는 다 막아 놓고, 어떻게 막히지 않은 출구로 나가 보니 시청광장도 다 막혀 있었다. 닭장차만 빼곡했다. 길에서 간간이 만나는 촛불 든 사람들에게 물어서 전경과 대치중인 종로3가로 갔다. 혼자 나가다 보니 특정 단체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해서 웬만큼 방관자적인 시각으로 집회를 관찰할 수 있었다. 머릿수나 채워 주려고 나갔다는 말이 맞겠다.
길에 나가 있던 열두 시간 동안 별 일이 다 있었다. 5시께에는 그렇게 하늘이 말짱하게 개었던 주제에, 본격적으로 대치하기 시작할 때에는 비가 마구 퍼부었다. 비 안 올 줄 알고 나갔는데 이런 낭패가. 덕분에 물대포 대신 장대비만 잔뜩 맞았다. 목욕탕 냉탕에 가면 천장에 달려있는 물줄기를 맞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빗줄기가 거세었다. 우비가 소용이 없어 팔이랑 무릎 아래는 질척질척. 우비가 자꾸 팔을 휘감는 느낌이 짜증스러웠다. 비를 맞으면서도 끄떡없으니 물대포로 시위대를 강제해산시키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경찰들이 닭장차로 길을 막아 놓고 가 버렸다. 그 뒤 새벽 세 시까지 서울 전체를 쏘다니면서 게릴라 시위의 진수를 맛보았다. 중간에 세 번인지 두 번 정도 쉰 것 빼고는 계속 걸었다. 경찰이 막으면 그 쪽으로 "안녕~"하고 인사를 한 다음에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새벽 세 시 반에 강북삼성병원 앞에서 진압이 들어왔다. 후미가 고립되는 바람에 선두가 가던 길을 돌아왔는데 앞길을 경찰이 다 막고 있었다. 다들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 경찰이 왁 쏟아져나왔다. 근처 건물에 모르는 사람들이랑 들어가서 셔터 내리고 숨어 있었다. 가장 늦게 들어온 내가 웅크리고 셔터 밑으로 상황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 몇 명이 오더니 셔터를 발로 뻥뻥 찼다. 연행당할 줄 알았는데 채증만 하고 숨어 있는 사람들을 다 보내 주었다. 군홧발에 심히 놀라서 다리에 힘도 안 들어가고 울고만 있으려니까 주변에 있던 다른 시위대가 의료진을 불러 주었다. 어떤 모르는 아주머니 차로 피신한 다음에는 긴장이 풀려서 탈진해서 뻗었다. 그 때가 아마도 새벽 4시 반. 6월 29일 새벽에는 내가 보살피는 입장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기분 참 묘하다. 다행히 아주머니랑 나랑 같은 동네에 사는 바람에 차를 그대로 얻어타고 집까지 왔다.
─ 이게 어제 저녁 8시부터 오늘 아침 8시 반까지의 이야기.
마치 간밤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기만 한 거리를 보니 조금 슬펐다.
1. 평소에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집회에서 술 마시고 표출하는 모질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남자고 여자고 가릴 것 없이 그렇다. 술 안 마시고도 저런 짓거리 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멀쩡한 닭장차는 왜 부수려고 덤비는 건데. 같은 시위대한테 욕하는 건 또 뭐냐고.
2. 닭장차로 길을 막아 놓고 경찰들이 가고 나서 지붕이 있는 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혼자서 후드 뒤집어쓰고 머리는 빗물로 떡져서 찌질하게 서 있으려니까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춥니?" 대충 긍정으로 보일 만큼 고개를 주억거렸더니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미지근한 피크닉을 꺼내서 주셨다. "이거라도 좀 먹어라. 담배는 오빠들한테만 주는 거야." 좀 뻘쭘하게 감사 인사를 하고 피크닉을 쪽쪽 빨아먹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아저씨가 날 굉장히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계셨다.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앞에는 '이런 데까지 나오게 해서'라는 말이 생략된 듯했다. 아무래도 날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신 것 같았다. "아빠 같은 아저씨가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음료수도 줄 수 있고, 이렇게…… 살구도 줄 수 있지!"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주머니에서 살구 하나를 꺼내서 나한테 쥐어 주고 가 버렸다. 비 맞은 몸이 오들오들 떨렸는데, 미지근한 피크닉과 살구 덕분에 훈훈해졌다. 몸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3. 오마이뉴스에서는 '집회의 방향을 두고 참가자들 사이에 토론이 이어졌다.' 뭐 이런 식으로 촛불집회에 대한 기사를 어떻게든 좋게 쓰려고 하는데, 12시간 동안 종일 여러 군데를 헤집고 빨빨거리고 싸돌아다닌 내가 봤을 땐 그걸 건전한 토론으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험악한 욕설도 오가고, 목소리도 듣기 싫을 정도로 높아지고, 내가 봤을 땐 깃발들끼리의 주도권 싸움으로밖에 안 보이던데. 자신의 의견을 시위대 전체의 의견인 양 말하는 것도, 선두 그룹을 말로 설득할 수 없으니 뒤에다 대고 "촛불들아 모여라!"하는 식으로 목소리 높이면서 선동하는 것도, 쓸데없는 영웅 심리로 보여서 다 마음에 안 들었다. 나중에는 앞자리에서 열심히 설치다가 경찰들 표적이 될 것 같으니까 깃발을 내리는 기수도 있었다. 내가 너무 꼬인 건가? 시위를 자기들 선에서 '주도'하려고 했던 대책위랑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과거의 내가 얼마나 치기어린 모습으로 잘난 체를 하고 있었는지 알려준다는 점에 일기의 의의가 있다. 당시의 나는 촛불시위에 대충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고, 자신이 '정치적이지 않은 선량한 시민'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3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시위의 방향이 어떤 식으로 수정되어야 하는지 가닥조차 명확히 잡고 있지 않았으면서, 단지 시위대끼리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는 사실에만 염증을 내고 있다.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줄 알았던 주제에 무슨 논평을 하려 들었는지 모르겠다.
촛불시위 때 조금만 삐끗했으면 노빠가 되었을텐데 어쩌다 빨갱이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_-; 아마 정치캠프 이후부터인 듯하다. 그러면 내가 '정치적이지 않은 선량한 시민'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NL을 가장 혐오하는 사람은 NL이었다가 전향(?)한 사람이라고 하니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