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은 누구나 기차에 흥미를 느낀다. 그런데 만일, 기차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사악한 일이라고 소년에게 말했다고 해보자. 기차를 타거나 역에 나갈 때마다 아이의 눈을 붕대로 감아버렸다고 하자. 아이 앞에서는 '기차'란 말을 일절 입에 담지 못하게 하고, 아이가 장소를 옮길 때 이용하는 그 교통편에 대해 알 수 없는 신비감에 싸이게 내버려두었다고 하자. 그 결과 아이가 기차에 대해 관심을 잃게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전보다 더 흥미를 느끼는 한편 병적인 죄의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기차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적극적인 지성을 가진 소년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정도의 신경 쇠약증에 걸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버트런드 러셀, 사회평론,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개정판)
국내도서>인문
저자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 송은경역
출판 : 사회평론 200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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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한 권이 기독교(넓게는 종교 전반)가 끼치는 해악에 대해 성토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딱히 종교랄 게 없는 나에게도 그 신랄함은 무척 껄끄럽다. 껄끄러운 만큼 시원하기도 하지만. 논리 유희의 진수와 쾌감을 이 책에서 보았다.

  쭉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따로 적어 두었다. 성 자체를 죄악시하는 문화(?)는 비단 기독교 문화권만의 산물은 아닐 것이다. 미성년자에 의한 '강력' 성범죄가 빈번해지는 판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착상을 한 다음 어떻게 태아로 자라는지를 백 날 가르쳐봤자 하나도 소용없다. 쓸데없는 소리를 할 시간에 콘돔을 어떻게 쓰는지, 배란일과 생리주기는 어떻게 계산하는지, 사후피임약이 여자 몸에 얼마나 안 좋은지, 어린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주변에 성폭행 피해자가 생겼을 경우 그(녀)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 게 옳은지 조목조목 알려주는 편이 훨씬 낫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성별을 떠나서, "내가 책임질게!"라고만 말하면 피임을 안 해도 되는 줄 아는 바보들이 너무 많다. 대체 뭘 책임진다는 걸까? 임신하면 낙태할 수 있게 돈을 보태준다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아이를 낳아서 아이가 독립된 개체로서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기르겠다는 걸까? 이런 일말의 고찰도 없이 "내가 책임질게!"라고 말하며 피임을 하지 않는 남자도, 그 무책임한 말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신뢰를 느낀 나머지 콘돔을 쓰라고 남자를 닦달하지 않는 여자도, 내게는 다 똑같아 보인다. 멍청해 보인다는 뜻이다.

  * 2009년 8월 1일 작성.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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