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병기 그녀 1Takahashi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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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봤을 때에는 그야말로 펑펑 울었고, 근 일주일을 후유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몇 년 후에 다시 본 <최종병기그녀>는 생각 없이 울면서만 보기에는 너무나 불편했다. <최종병기그녀>를 <에반게리온>과 비교하여, 인간의 내면을 조명하는 철학을 담은 작품이라는 포스트를 어디선가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내가 에반게리온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최종병기그녀>에 철학이라 할 만한 건덕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내러티브 없음. 개연성 없음. 철학 없음. "미안해 슈지……"로 시작해서 "미안해 슈지……"로 끝나는 만화.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왜 치세가 병기로 개조되었는가? 독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주변인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전쟁의 비극은 그야말로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만 조명된다. 마치 이 별에 치세와 슈지 둘밖에 살지 않는 양. 이야기 속의 모든 장치는 치세와 슈지의 절절한 사랑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치세의 몸이 무너져내리는 상황도, 사랑의 도피처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며 생계를 잇는 상황도, 심지어 전쟁까지도! 새벽 두 시쯤, 감수성이 충만해져서 거의 폭발하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에 대충 후루룩 넘기면서 코를 훌쩍이기에는 좋다. 그러나 그뿐이다.

  아, 한 가지 더 있다.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치세의 몸을 더듬으며 어쩔 줄을 몰라하는 슈지라든가, 슈지에게 몸을 맡기고 떨고 있는 치세라든가, 교복을 입은 채로 하늘을 나는 치세의 허벅지라든가, 잠옷 한 장만 걸친 치세를 보며 야릇한 감정에 휩싸일 수도 있다.(젠장!) 애초에 원작자부터가 책에서 '성욕이 넘치는 20대 남성들을 겨냥하여 그렸다고' 말하고 있으니, 연약한 소녀에 대한 온갖 (성적)판타지와, 무기를 향한 남성의 거의 본능적이기까지 한 애수가 온통 뒤범벅되어 만화책 일곱 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난 그게 몹시 불쾌하다!

  * 2009년 9월 2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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