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국내도서>소설
저자 : 스티븐 킹(Stephen King) / 한기찬역
출판 : 황금가지 200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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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작 책을 읽는 내내 신경이 쓰인 부분은 사건과 회상, 인터뷰, 신문기사 등을 적재적소에 뒤섞은 특이한 구성과, 평범하게 무리 속에 섞이고 싶어 발버둥치는 미운오리새끼가 결국 어떻게 파멸의 길로 치닫는가 따위가 아닌 다른 부분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게 발번역이구나. 읽는 내내 쌍욕이 나왔다. 흔히 쓰이는 단어인 '초경'을 '첫 생리'라는 어색한 어휘로 번역해 놓은 역자의 무지함은, 뭐 남자니까 그렇다 치자. 생리를 참았다가 나중에 하라는 식으로 지껄이다가, 대략 5일에서 7일 내내 가랑이에서 피를 흘린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고 기겁하는(실화다. 참고로 월경 중 여자는 우유곽 200ml 정도의 피를 흘린다고 한다. 몰랐던 사람은 지금이라도 반성하자. 무지는 자랑이 아니다.) 남자도 있으니까. 그런데 글 곳곳에서 불편할 정도로 기웃거리는 비문은 정말 못 참아 주겠더라. "열여덟 살 때 고등학교를 중퇴한 케니 카슨은 초등학교 3학년의 독해 수준이었다." 미친 거 아냐? 케니 카슨이 독해 수준이니? 케니 카슨의 독해력이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인 게 아니고? 게다가 역자가 국문과 출신이라 더 화가 났다. 내가 고등학교 때 꿈꾸었던, 그러니까 국문과에 진학해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나서 외국의 명작을 번역하는 코스를 그대로 밟은 주제에 문장이 이따위로 엉망이라니 용서가 안 된다. 출판 전에 윤문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나?

  원문으로 읽을 때 비로소 맛깔나게 존재감을 뽐내는 말장난이나 농담을 한국어로 그대로 옮길 수 없다는 로컬라이징의 한계야 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외국 작품을 한국말로 옮길 거면 일단 한국말이라도 제대로 써야 할 거 아냐. 독자가 책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는 문장을 다듬어야 할 거 아냐. 피천득 시인이 예이츠의 <하늘의 고운 자락>을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답게 번역했는지 역자가 좀 봤으면 좋겠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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