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신뢰하는 친구들 중 두 명이 남자라는 사실은, 그 친구들이 지닌 특징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 아이들은 내게 이성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 역시 그 아이들에게 이성으로 느껴졌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남학생 비율이 월등히 높은 학교에 입학했지만, 정작 내가 둥지를 튼 곳은 남자보다 여자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은 곳이었다. 그러니까 여지껏 나는, 실질적으로는 여자들의 세계 속에서만 살아 온 셈이다. 남성에 대한 면역력이,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말을 섞을 용기가 없어 도망다니던 초등학교 6학년 때에 비해 그다지 높지도 않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런 상황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스트록 리듬을 가르치면서 무릎을 건드리길래 얼굴을 살짝 굳히고 "왜 스트록 배우는데 무릎을 치셔야 돼요?"라고 말하니, "그럼 무릎 말고 팔을 치면 되죠."라고 받아치더니 팔뚝을 건드렸다. 스트록을 가르쳐 줄 때 굳이 손으로 내 다리를 건드려야 했을까? 내가 긴 바지를 입고 있었어도 신경이 곤두섰을 판에, 그럴 때마다 나는 반바지나 치마를 입고 무릎께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내 등 뒤로 돌아와서 굳이 손을 잡는 이유는 또 뭔데? 같이 기타를 배우기로 했던 선배가 사정이 생겨서 레슨을 그만둔 시점부터 이렇다. 내가 과민한가 싶어서 수 차례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 전에도 내 손가락을 잡고 코드 짚는 법을 교정한 적은 있었지만, 불필요한 터치가 아니었으므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었다. 의도가 빤히 보여서 남들은 다 알고 자기만 모르는 허세를 부릴 때에도, 나한테 딱히 폐를 끼치는 건 아니니까 기타만 잘 가르쳐주면 되지-하면서 그냥 웃어넘겼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알게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여자사람한테 오밤중에 전화해서 자길 락페 경호원으로 써 달라느니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기분이 확 나빠져서 기껏 예매해놓은 표도 취소해버리고 싶다. 왜 더 일찍 알아채지 못했을까 싶어서 자꾸 날 탓하게 된다. 미니스커트를 입었으니까 성폭행을 당한다는 논리랑 똑같긴 한데, 막상 이런 일이 생기고 나니 자책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가 똑부러지게 굴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레슨이 두 번 남았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제대로 마무리해야 할 텐데, 이런 기분으로는 제대로 레슨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실은 그 사람이 더 이상 내 몸에 손을 댈 빌미를 만들고 싶지 않다. 웬만하면 가려고 했는데 그냥 안 가련다. 먹고 떨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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